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머리로는 알고 있다. 지금의 내 삶이 나에게는 최선이라는걸. 나로서는 매 순간 심각하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내린 선택들로 이루어진 결과라는걸. 남들 눈에는 스카이 대학을 못 나왔고, 알아주는 회사에 취업하지도 못했고, 연봉도 쥐꼬리만하고, 그 나이 먹도록 자식은커녕 결혼도 못 한 루저로 보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이게 최고의 삶이라고, 이보다 더 나은 삶은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따금 나보다 좋은 스펙을 가졌거나 업계에서 잘나가는 사람을 보면, 돈이 많거나 좋은 집에 살거나 비싼 차를 타거나 그럴듯한 가정을 이룬 사람을 보면, 내 삶이 초라해 보이고 과거에 내가 한 선택이 과연 맞나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는 내내 누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귀가 간지럽고 몸이 배배 꼬였다. 주인공 노라 시드는 서른다섯 살 여성이다. 학교 다닐 때는 전도유망한 수영 선수로 이름을 날렸고, 오빠와 밴드를 결성해 음반 계약 직전까지 가기도 했지만, 현재는 동네 음반점에서 일하면서 동네 아이에게 피아노 과외를 해주며 근근이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라는 음반점에서 잘리고 설상가상으로 과외마저 못하게 된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기보다 못한 줄 알았던 친구들은 어느새 자리를 잡고 제대로 밥벌이를 하고 있고 가정까지 꾸린 상태였다. 이제라도 뭘 시작해 보기에는 나이도 많은 것 같고 학력도 변변하지 않다. 그렇다고 열정을 쏟아부을 정도로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일도 없다. 


급기야 노라는 죽기로 결심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사라졌어야 할 정신이 들었고, 눈을 뜨고 돌아본 공간은 노라가 생전 처음 보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한 공간이었다. 그곳은 바로 도서관. 끝없이 이어지는 서가와 수많은 책들을 지나 노라는 반가운 얼굴을 만난다. 얼굴의 주인은 옛날에 노라가 다닌 학교의 사서 선생님이었던 엘름 부인. 엘름 부인은 노라에게 '후회의 책'이라는 책 한 권을 건네며, 노라가 그동안 살면서 한 후회들의 목록이 이 책에 전부 적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모두 노라가 한 후회가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벌어졌을 법한 일들을 담고 있다고 전한다. 가령 수영을 계속했다면, 밴드를 계속했다면,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면, 친구에게 더 잘해주었다면 같은 일들... 


상상만 했던 미래를 실제처럼 경험하면서, 노라는 흥분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는 노라가 상상한 것보다 별로였고, 어떤 경우는 노라가 상상한 것보다 잘 풀렸지만 그에 따르는 고통이나 슬픔이 있었다. 딱 한 번 이대로 계속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때도 뭔가 빠진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집, 내가 원하는 직업, 내가 원하는 배우자와 자식, 친구들...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지만 왠지 모르게 내 삶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래의 삶에서 노라는 평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다양한 삶을 경험해보니 나름 많은 일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살면서 좋은 사람은 한 명도 못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삶을 체험하면서 그들을 하나씩 잃는 경험을 해보니 그들 모두가 소중하고 의미 있는 존재였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노라가 피아노 과외를 했던 리오와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원래의 삶에서 노라는 리오를 그렇게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저 리오 엄마의 부탁을 받아 리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약간의 용돈을 벌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오의 피아노 선생이 되지 않은 삶에서 노라에게 피아노 과외를 받지 않는 리오가 안 좋은 일에 휘말리는 모습을 보고 노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 일이 사실은 리오의 삶을 뒤바꿀 수 있는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노라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던 그 일이 리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 모든 만남이 일생에 한 번뿐인 만남이므로 후회하지 않도록 잘 대접하라는 불교의 말씀이 저절로 떠오른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귀인이라고 생각하고 잘 대접해야지. 나도 누군가의 귀인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늘 좋은 말과 바른 생각을 담아야겠다. 한 번뿐인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매일이 한 번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다양한 일에 도전해보고 싶은 용기가 생긴다. 나라는 책 한 권을 쓴다면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이 책처럼 다채롭고 재미있는, 그러면서도 교훈이 있고 감동이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