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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가격
가쿠타 미쓰요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0년 8월
평점 :

일본 여성 작가의 에세이집을 주기적으로 읽어줘야 하는 병(?)이 있다. 어릴 때는 에쿠니 가오리 스타일의 온화하고 잔잔한 느낌의 책을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사노 요코처럼 웃기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한 느낌의 책이 좋다. 가쿠타 미쓰요는 전자라고 생각했는데 볼수록 후자인 작가다. 2005년에 발표한 에세이집 <행복의 가격>(한국에선 2020년에 출간됨)은 제목도 그렇고 목차를 봐도 그렇고 뭔가 행복에 관한 몽실몽실한 느낌의 글이 실려있을 것 같은데 읽어보면 아니다.
책에는 저자가 구입한 물건들(때로는 서비스)에 관한 이야기 또는 추억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977엔짜리 런치에 얽힌 추억, 3000엔을 주고 산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에 관한 기억, 항공권 취소 수수료로 3만 엔을 물었던 일 등이 이어지는 식이다.
저자는 가계부를 챙겨 쓸 만큼 금전 관리를 철저히 하는 편인데, 그렇다고 해서 소비를 전혀 안 하거나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아니다. 돈이 없었을 때도 술 마시는 데 쓰는 돈은 아끼지 않았다. 여행을 좋아해서 돈이 모이는 족족 여행에 썼다. 일도 생활도 엉망이라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어느 날에는 우연히 발견한 가구점에서 필요도 없고 취향도 아닌 30만 엔짜리 소파 테이블을 충동구매 해버렸을 만큼 '시발 비용' 지출에도 일가견이 있는 편이다. 사이즈 확인도 안 하고 최신형 냉장고를 샀다가 뒤늦게 정신 차리고 반품한 적도 있다.
'시발 비용'을 부르는 빌런들의 이야기도 여럿 나오는데, 내 생각에 빌런 오브 빌런은 저자의 남자친구(들이)다. 샤워파인 저자에게 탕목욕을 하라고 '고나리질'을 하지 않나, 가방 대신 비닐봉지 좀 썼다고 '노숙자 같다'고 하지 않나... 사랑하는 사이 맞나요? 이런 남자랑 왜 사귀나요?... 하여간 이런 말을 듣고 이런저런 물건들을 많이도 사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과거에 내가 남자한테 쓴 돈이나 남자한테 잘 보이려고 쓴 돈 생각이 났다. 그 돈으로 차라리 책을 살 걸, 여행을 다닐 걸...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이람. 앞으로나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