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닮았는가
김보영 지음 / 아작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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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문학계에서 아주 유명한 작가라고 해서 구입한 책이다. 여러 해 동안 발표한 단편들을 엮어서 만든 책인데, 앞부분에 실린 네 작품 - <엄마는 초능력이 있어>, <0과 1 사이>, <빨간 두건 아가씨>, <고요한 시대> - 가 압도적으로 좋았다. 


<0과 1 사이>에는 21세기에 살지만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은 1970년대나 80년대에 멈춰 있는 어른들이 나온다. 애들은 때려서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 어른들, 공부는 국영수를 중심으로 하고 다른 건 필요 없다고 믿는 어른들, 행복은 성적순이고 대학 간판이 밥 먹여준다고 믿는 어른들. 더 이상 학력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고 외국어는 통번역 앱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도 자신들이 믿는 것만 고집하는 이런 어른들은 과연 21세기를 살고 있는 게 맞을까. 실은 과거에서 온 시간 여행자들이 아닐까.  


<빨간 두건 아가씨>에는 여자로 사는 것, 여자임을 드러내는 것 자체만으로 폭력의 대상이 되고 생명을 위협당하는 세계가 그려진다. 여자들이 앞다투어 남자 되기를 택하는 세계. 딸이 태어나도 안전을 위해 아들로 키우는 세계. 여자가 치마를 입거나 긴머리를 늘어뜨리기만 해도 성관계 동의로 보고 남자들이 달려드는 세계. 이런 세계는 현실과 얼마나 다를까. 실은 한 번도 달랐던 적이 없는 건 아닐까. 


초능력이라고 하면 현실에서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능력 같고, 외계인이라고 하면 살면서 한 번도 만날 일 없는 존재 같지만, 잘 생각해 보면 김연아 선수처럼 도저히 나와 같은 인간이라고 믿기 힘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고 있지만 관심사나 취향 면에서 접점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초능력자보다 더 초능력자, 외계인보다 더 외계인 아닐까. 우리는 이미 초능력자, 외계인과 더불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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