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기 위해 쓴다 - 분노는 유쾌하게 글은 치밀하게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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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노동의 배신>, <희망의 배신>, <긍정의 배신> 등을 쓴 미국의 체험형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신간이다. 저자가 그동안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엮어서 만든 책인데, 최근에 발표한 글은 물론이고 90년대, 80년대에 쓴 글도 다수 실려 있다. 저자의 글이 그만큼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게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서-라는 이유일 수도 있지만, 저자가 제기한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거나 오히려 악화되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이 책에 실은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발표 연도와 무관하게 여전히 '시의적절'하고 심각하고 중요하다. 


책에는 저자의 관심 분야인 노동, 복지, 빈곤, 불평등, 여성 문제에 관한 글들이 주로 실려 있다. 대표작 <노동의 배신>을 통해 저자는 '열심히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비숙련 저임금 노동자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했다. 이번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열심히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문제가 비숙련 저임금 노동자 계층을 넘어 고숙련 노동자 계층으로 왔음을 지적한다. 저자가 속한 언론 산업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프리랜서 언론인들도 열심히 노력하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언론 지형이 바뀌고 언론 매체가 직원 수를 줄이고 프리랜서 예산을 삭감하면서 고학력, 고숙련 프리랜서 언론인들이 먹고살기에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처지에 놓였다. 저자는 오늘날의 저널리즘 수준이 형편없이 낮고 편파적인 것은 해고될 염려가 없는 - 그래서 빈곤층이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 언론 재벌들과 이들이 고용한 임직원들이 언론 매체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젠더 문제에 관한 지적도 흥미롭다. 저자는 여성성과 거리를 두는 것으로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려고 한 '구남성'과 구분되는 '신남성'이 도래했다고 쓰면서, 이들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가정 살림에 능하며 외모 관리에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인다는 점에서 구남성과 구분되지만, 여성의 권리 향상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는 구남성과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신남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남성성을 의심받는 것이 아니라 계층이 하락하는 것, 정확히는 실제보다 낮은 계층으로 보이는 것이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신남성들은 달리기를 하고("달리기는 앉아서 일해야 하는 직장을 가졌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운동"), 몸매 관리를 하고, 그루밍을 하고,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하고 파티를 연다. 이러한 변화가 여성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할 일인데, 놀랍게도 이 글은 최근이 아니라 1984년 <뉴욕타임스>에 발표되었고, 적어도 내 생각에는 신남성의 출현으로 인해 여성의 삶이 더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바쁨이 곧 능력이라는 믿음>이라는 제목의 글도 좋았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잘 나간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바쁘다는 말을 버릇처럼 사용한다. 그런데 과연 바쁘다는 말이 잘 나간다는 의미를 내포한 휘장이 될 수 있을까. 저자가 보기에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전혀 바쁘지 않다. 성공한 기업가, 학자, 창작자들은 반드시 자신이 해야 하는 일만 스스로 하고 반드시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위탁(아웃소싱)한다. 그러니 정말 바빠서가 아니라, 단지 잘나가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바쁜 척을 하고 있다면 그만두는 편이 낫다. 사실은 한가한데 그 사실을 들키면 누가 나한테 뭘 시킬까 봐 바쁜 척하는 거라면 상관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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