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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평점 :

캐럴라인 냅의 책을 처음 읽었다. <드링킹>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애주가가 아니다 보니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도 추천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반려동물이 없다 보니(반려인도 없다) 책을 백 퍼센트 즐기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에 반해 <명랑한 은둔자>는 출간되자마자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바로 구입했는데, 그건 역시 내가 (삶의 이런저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명랑하고 (외향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실은 극도로 내향적인) 은둔자적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난 이 책 <명랑한 은둔자>는 예상보다 가벼웠고 기대보다 여운이 묵직했다. 혼자 사는 삶에 관해 쓴 초반부는 마치 나의 일기 같았다. 남들처럼 짝을 찾는 대신 혼자 사는 삶을 택한 - 그로 인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온갖 염려와 비난을 듣는 - 저자의 모습은 지금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가 물어야 할 '왜?'는 '왜 혼자 지내는가?'가 아니라 그보다 더 흥미로운 질문으로 바뀐다. 왜 혼자 지내지 않는단 말인가?" - 47쪽) 그렇게 소신을 지키다 암 선고를 받은 직후 연인과 결혼해 아주 짧은 결혼 생활을 했다는 대목을 읽고는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평생 혼자 살기로 한 결심과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 충돌할 때 나는 어떤 선택을 내릴까.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은 같이 존재할 수 없는 걸까.
거식증과 알코올 중독에 관한 대목도 흥미로웠다. 저자는 중독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중독으로 이어지는 심리적 과정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썼다. 중독으로 이어지는 개인의 욕망과 통제욕, 분노와 우울 등의 감정을 이해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중독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독은 단 하나의 요인으로 촉발되는 게 아니다. 저자의 경우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부모에 대한 열등감, 인정받고 싶은 욕구, 외모에 대한 강박, 애인에 대한 원망 등등이 결합되어 음식을 거부하고 술독에 빠지는 증상으로 나타났다. 이 대목을 읽으며 몇 년 전 거식증과 우울증으로 세상을 등진 친구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기 전 자두 한 알조차 먹기 힘들었다던 친구. 그가 살아 있었다면 이 책을 함께 읽고 많은 대화를 나눴을 텐데. 좋은 사람은 너무 빨리 떠나고, 남은 사람은 너무 늦게 그걸 깨닫는다.
저자의 글은 아무리 열렬한 페미니스트라도 거울 앞에선 몸매 걱정을 하고 연봉 협상 앞에 약해진다는 것을, 아무리 훌륭한 부모도 자식에게는 빛인 동시에 빚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리 뜨거웠던 우정도 한순간에 차갑게 식을 수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누구의 삶에나 남들은 이해하기 힘든 모순이 있기 마련이고, 남들의 눈에는 그것이 우습게도 보이고 어리석게도 보이지만, 정작 그 모순을 끌어안고 있는 사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발목에 매단 것처럼 초조하고 괴롭다. 저자의 글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멀리 떨어져 있는 나에게 깊은 공감과 예리한 통찰을 주었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불안과 혼란마저도 글로 엮어 생계를 이어야 했던 저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