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해의 폴짝 - 정은숙 인터뷰집
정은숙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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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마음산책이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지난 스무 해를 함께 보낸 문인(소설가+시인+평론가) 20명을 인터뷰한 글을 엮은 책이다. 인터뷰와 관련해 세 가지 원칙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스무 해를 도약대로 폴짝 뛰고 싶은 마음을 담아" 인터뷰에 응한 문인들에게 운동화를 선물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문인들이 각각 어떤 운동화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브랜드, 색상, 디자인 등등)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일 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태반인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고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구절이 많았다. 무엇을 쓰겠다고 결심해서 쓰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우연히 무엇을 알게 되고 그것에 대해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쓰게 되는' 이야기들이 소설이 되고 책이 된다. 김숨 작가는 고미술품 복원 과정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복원사를 만나게 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L의 운동화>를 집필하게 되었다. 정이현 작가는 육아 때문에 집필에 들일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틈틈이' 글을 쓴다. '무엇을 쓸 수 있을지, 무엇을 쓰는 것이 맞는지, 내가 계속 쓰는 것이 맞는지'는 써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써봐야만 알 수 있다. 


쓰는 사람의 자세에 관한 구절도 많았다. "폴 발레리가 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출처가 불분명한 문장이죠.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김영하 작가의 <빛의 제국>에도 인용돼 있는 문장이고요. 예전에는 사는 대로 생각했던(썼던) 것 같아요. 내 삶의 구조와 그 본질로부터 자연스럽게 산출되는 생각을 진실하게 쓰는 것, 이게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바뀌기 시작했어요.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써야) 된다고 말이죠. 제가 옳다고 여기는 생각을 글에 담아 먼저 보내고, 제가 제 글을 좇는 거예요." (신형철, 38-9쪽) 


김용택 시인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우리 동네 아버지들이나 어머니들은 학교를 안 다녔지요. 책도 안 읽었어. 글자를 몰라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마을에서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어요. 농부들이 농사짓는 것을 보면, 하루하루 일상적인 삶이 공부였어. 삶 속에서 공부가 되었던 거지요." (504쪽) "글을 쓰려고 하지 말고 생각을 쓰면 글이 된다고 하지요. (중략) 글을 써서 무엇이 되는 게 아니라 글을 쓰다가 보면 무엇을 하게 되더라. 또 사실 무엇이 되어 있기도 하지요." (506쪽) 이 밖에도 곱씹게 되는 문장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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