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시체 문화유산 탐방기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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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봤자 시체가 되겠지만>을 쓴 미국의 장의사 케이틀린 도티의 신간이다. 전작에서 미국의 장례 문화를 소개한 저자는 이번 신작에서 미국을 떠나 인도네시아, 멕시코, 스페인, 일본, 볼리비아 등 여러 나라의 장례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느낀 바를 소개한다.


저자는 고도로 자본화, 현대화된 미국의 장례 절차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의 장례 절차는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시체를 방부처리하는 과정에서 친환경적이지 않은 화학 물질이 너무 많이 주입되고, 죽은 자와 산 자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어서 죽은 자를 애도하고 산 자를 위로하는 장례의 본래 기능을 적절히 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저자는 '장례 여행'을 계획했다. 책에는 각 나라의 장례 문화가 자세히 나온다. 인도네시아의 '마네네' 의식, 멕시코의 '미초아칸', 스페인의 '알티마 장의사', 일본의 '고쓰아게', 볼리비아의 '냐티타' 등 용어만 보면 생소한 것이 대부분이고, 그 내용을 보면 시체를 꺼내서 씻긴다거나(마네네) 두개골을 집에 모셔놓고 소원을 비는(냐티타) 등 현대인의 관점으로 보면 뜨악한 것도 있다. 


하지만 장례 전문가인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의식에도 나름의 이유와 효용이 있다. 특히 멕시코의 미초아칸(망자의 날) 같은 의식은 장례가 끝난 후에도 죽은 사람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이 날만큼은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마음껏 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일본의 고츠아게 역시 화장하고 남은 뼈를 유가족이 직접 수습함으로써 죽은 사람을 끝까지 보살피고 책임졌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필요한 절차일 수 있다.


저자는 각 나라의 장례 문화를 살핌과 동시에 죽음과 관련해 어떤 성차별적 요소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예전에는 시신을 돌보는 일이 주로 여성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에 시신 돌봄이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했고, 시신 돌봄은 보수를 두둑이 받는 남자들이 하는 '직업'이자 '기술', 심지어 '과학'으로 바뀌었다. 남미 국가들은 대부분 가톨릭을 믿지만 민속 신앙이 혼재하며 이를 주관하는 무당은 대다수가 여성이다. 이는 여성들이 "가톨릭 교회 내에서 권력과 자원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나아가 저자는 자연장, 풍장에 주목한다. "나는 인생의 30년을 짐승의 살을 먹으며 보냈다. 그런데 내가 죽고 나서 그 짐승들이 반대로 나를 먹는 것은 왜 안 된다는 말인가? 나도 하나의 짐승 아닌가?" (221쪽) 저자의 설명을 들으니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삶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떠오른다. 인간의 시체를 보는 것도 두려워하는 내가 동물의 시체(고기)를 먹는 것은 온당할까. 이런 모순적인 삶을 모순적인 죽음으로 마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많은 질문이 남는다.



내가 일하면서 부딪히는 주요한 질문 중 하나는, 어째서 내가 속한 문화에서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도 꺼리는가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들이 죽으면 시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그런 대화를 거부하는 것일까? 죽음을 피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우리는 필연적인 종말에 대한 대화를 피함으로써, 재정 상황과 죽음을 애도하는 능력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16쪽)


"여성의 몸은 생식기든, 섹슈얼리티든, 몸무게든, 옷 입는 방식이든 종종 남성의 시선 하에 놓인다. 몸이 엉망으로 일그러지고 혼돈스러워지고 야생의 것이 되어 해체되었을 때만 찾아지는 자유가 있다. 나는 앞으로 내 시신이 어떻게 될지 시각적으로 이미지를 그려보는 게 참 좋다." (135쪽)


"20세기 초반에 시신 돌봄이 하나의 산업이 되었을 때, 죽은 사람을 누가 맡아 돌볼 것인가에 대해 커다란 지각변동이 있었다. 시신 돌보는 일이 여자들이 하던 본능적이고 원시적인 일에서 보수를 두둑이 받는 남자들이 하는 '직업'이자 '기술', 심지어 '과학'으로까지 바뀐 것이다.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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