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 소설Q
이주혜 지음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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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 황정은 작가님 편에서 황정은 작가님이 추천하셔서 읽게 된 책이다. 처음에는 작가 이름도 낯설고 작품 제목도 생경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몇 장 읽고 푹 빠졌고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왜 이제야 이 작가와 이 작품을 알게 되었는지 후회스러울 따름... (그리고 이주혜 작가님과 <자두>를 알게해준 황정은 작가님과 책읽아웃에게 감사드린다.) 


이야기는 한 여자의 일상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번역가인 '나'는 유난히 힘들게 작업한 번역 원고를 출판사에 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집자로부터 역자 후기를 써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원고는 미국의 여성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가 평생에 걸쳐 쓴 글을 모은 것인데, 이 중에는 스무 살 가까이 연상이었던 선배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과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차를 타게 된 일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두 사람이 잠깐 나누었던 대화와 교감에 큰 자극을 받은 나는 몇 해 전 어느 여름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 마음을 이해받고 싶었지만 끝내 실패했던" 일을 떠올린다. 


한때 '나'에게는 남편과 시아버지가 있었다. 일찍이 아내를 여의고 혼자서 외아들을 키운 시아버지 안병일은 며느리에게도 유달리 다정하고 자상한 분이었다. 그랬던 시아버지가 어느 날 암환자가 되어 입원하는 상황이 된다. 유일한 가족인 '나'와 남편은 밤낮으로 열심히 간호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전문 간병인 황영옥을 고용하는데, '나'와 남편은 시아버지를 직접 간호하지 않는 것에 죄스러움을 느끼고 설상가상으로 시아버지는 병세가 호전되기는커녕 점점 악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평화로웠던 가족이 외부인 '영옥' 때문에 문제를 겪는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나중에 보면 외부인은 영옥이 아니라 며느리인 '나'이며, 더욱 정확히는 아버지-아들 중심인 가족 공동체 안에서 며느리(여성)는 결코 동등한 일원이 아니며 영원히 배제된 존재임이 드러난다. 이를 알지 못했던 '나'는 자신이 남편과 시아버지로 구성된 가족 공동체의 일원임을 믿어 의심치 않다가, 시아버지의 (환각을 빙자한) 학대와 남편의 배신으로 인해 자신이 오해했음을 깨닫고 같은 여성이며 외부인인 영옥에게 동질감과 미안함을 느낀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에 놀라웠고, 평소에 내가 막연하게 느껴왔던 문제를 구체적이고 분명한 서사로 구현해낸 작가님의 필력에 반했다. 여성과 여성의 연대로 이어지는 결말도 좋고, 이 이야기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에이드리언 리치와 엘리자베스 비숍이라는 실재했던 여성 시인들의 생애로 연결되는 점도 좋다. 이번 봄에 만난 소설 중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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