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 아버지의 죽음이 남긴 것들
사과집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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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남자가 한 명도 없으면 사람들이 무시해. 남자가 하나라도 있어야지." 엄마와 나, 여동생은 검은 한복을, 삼촌과 사촌 오빠는 양복을 입었다. 상주 완장은 사촌 오빠가 찼다.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사촌 오빠가 나 대신 내 아빠의 상주가 된 것이다. 온갖 결정은 내가 내렸지만, 아빠를 보내는 예식은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중략) 갈수록 억울하고 화가 났다. 한 집안의 장녀였음에도 아빠를 보내주던 마지막 날까지 앞에 설 수 없었다. 단지 내가 여자였기 때문에. (21쪽) 


딸뿐인 집의 장녀로서, 늘 고민하는 문제 중에 하나가 부모님의 장례다. 한국 사회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장례는 단연 남성 중심적이다. 복장부터 남성은 양복을, 여성은 한복을 입는다. 상주 완장은 남성이 찬다. 술을 따르고 불을 붙이는 일도, 관을 들어 옮기는 일도 남성에게 주어진다. 여성을 배제하는 장례 문화에 대해 토로하면, 엄마는 "그러니까 얼른 결혼하라."라는 말을 하고, 이미 결혼했거나 남자 형제가 있는 친구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오로지 비혼이고 여자 형제뿐이거나 외동인 친구들만이 내 문제에 공감하는 듯 보인다. 


책에는 저자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경험한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 문화에 대한 비판과 이를 대체할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나온다. 한국의 장례 문화의 문제점은 남성 중심적이라는 것뿐만이 아니다. 경쟁하듯 부조금을 뿌리고 조화를 보내는 문화는 진지한 태도로 고인의 삶을 되짚어보고 명복을 비는 시간이 되어야 할 장례를 "인간관계를 위해 뿌린 수금의 반복"에 지나지 않게 만든다. 부조금의 액수와 조화의 개수를 비교하며 우월감 또는 열등감을 느끼는 행위는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욕되게 만든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저자는 자신의 삶을 다시 설계했다. 남편과 자식의 비호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비혼으로서 자신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삶을 더욱 알차게 꾸려나가고 싶다. 혈연으로 이어진 공동체에 국한되지 않고, 비슷한 비전과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교류하는 삶을 살고 싶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의 답이 구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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