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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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요조의 산문집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에서 읽은 문장이다. 나는 주로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이었으므로, 이 문장을 읽은 순간 부끄러운 마음부터 들었다. 나와 다르게,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의 글을 더 찾아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홍은전의 <그냥, 사람>이 바로 그런 책이다. 


저자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13년간 교사로 활동했다. 처음 노들장애인야학의 문을 두드렸을 때만 해도 그는 장애인 문제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저자와 별로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학생들이, 그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외출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공부도 마음껏 할 수 없는 현실을 보고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가족과의 불화를 감수하며 13년을 장애인 교육에 바쳤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단체에서 나왔을 때, 저자는 그동안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체 바깥에서 보니 비장애인들은 여전히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청춘을 바쳤는데,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퇴보한 듯 보였다. 장애인뿐만이 아니었다. 비장애인들은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비롯한 사회 곳곳의 약자, 소수자들이 내는 목소리를 무시하거나 묵살했다.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배제하고, 남은 사람들끼리만 성장과 번영의 열매를 나누려고 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꿈도 꾸지 못할 자유를 아무 노력 없이 누리면서도 일상의 작은 불편조차 장애인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그들을 격리하고 가두는 엄청난 권력을 행사한다." (125쪽) 나라면 이런 현실을 깨달은 후 좌절하고 도망쳤을 것 같은데, 저자는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비장애인이기에 주어진 '특권'임을 잊지 않으며, 장애인과 그 밖의 약자,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글을 쓰는 일을 장장 5년 동안 해냈다. 


저자의 관심은 이제 동물권으로 향하고 있다. 반려묘들과 함께 지내면서 '좋은 동물'이 되고 싶어졌다. 동물에게 최대한 해를 끼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인간이라는 이유로, 인간이라는 핑계로 동물의 권리를 빼앗고 해치는 일이 너무나 만연해 있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계속 동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해나갈 생각이다. 장애인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약자, 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이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심장이 아니다. 가장 아픈 곳이다''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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