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고독한 날 - 정수윤 번역가의 시로 쓰는 산문
정수윤 지음 / 정은문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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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쓴 산문집을 좋아한다. 모국어와 외국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일을 해서 그런지, 관점이 기발하고 사고방식이 유연하다는 인상이 있다. 좋아하는 번역가의 산문집 목록에 이 책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정수윤의 산문집 <날마다 고독한 날>이다. 번역가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고 생각해서 확인해보니 <장서의 괴로움>,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읽는 인간> 등을 번역한 분이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를 쓴 작가 와카타케 치사코의 집에 초대받아 다녀온 이야기도 이 책에 나온다. 좋아하는 작품의 후일담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은 일본의 고유한 시 형태인 '와카'를 주제로 한다. 와카 한 편에 저자가 쓴 산문 한 편이 연결되는 식이다. 와카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일본의 오래된 시와 한국인 번역가의 글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지켜보는 재미를 느낄 것이고, 와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기회에 와카의 세계를 경험하고 와카를 음미하는 방법까지 배울 수 있어서 유익할 것이다. 나는 후자인데, 한국에서도 흥행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이 천 년 전 '오노노 코마치'라는 여자 시인이 쓴 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대 그리다 까무룩 잠든 탓에 나타났을까. 꿈인 줄 알았다면 깨지 않았을 것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어느 날 이 와카를 읽고 꿈에서 꿈으로 이어지는 사랑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몰랐다면 아쉬웠을 이야기. 알고 나니 <너의 이름은>이 더욱 깊이 있는 작품으로 느껴진다. 


책에는 저자가 이십 대 후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유학 간 이야기, 유학 생활을 하면서 우연한 기회로 번역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된 이야기, 번역가가 된 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한 이야기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와카도 좋고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좋아서, 오래오래 간직하며 생각날 때마다 들춰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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