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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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를 겨울의 아파트에서 읽었다.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 거칠게 분류하면, 전반부에는 주로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후반부에는 유년 시절 혹은 청년 시절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들이 담겨 있다. 소설마다 배경도 인물도 다르지만, 관통하는 주제는 '이방인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외국에서 살면 이방인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처음부터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서 계속 살아도 왠지 모르게 붕 떠 있는 것 같고,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때가 종종 있다. 어릴 때부터 이사를 자주 해서 고향이라고 느껴지는 곳도 없고 오랫동안 정붙이고 살았던 곳도 없는 나로서는,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느끼는 공허하고 단절된 기분을 잘 알 것 같았다. 


모든 작품이 좋았지만, 책을 다 읽고 덮은 후에도 계속해서 떠올랐던 건 표제작 <여름의 빌라>이다. 남편과 함께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일하며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는 '나'는 독일 유학 시절 신세를 진 독일인 부부와 함께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떠난다. 인생의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어떻게 보면 막역하다고도 할 수 있는 사이인데도, 오랜만에 만난 '나' 부부와 독일인 부부 사이에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 같은 것이 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나'는 그것이 국적과 계급의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국적이나 계급이 같아도 생의 어느 지점부터 멀어지는 인간관계를 종종 겪은 나로서는 소설 속 내용이 남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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