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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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인상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배경이 뉴욕이라는 것, 화자가 어리고 갑자기 아버지를 잃었다는 것 등 우연이라기에는 겹치는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다(관련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니콜 크라우스가 부부라고 한다). 첫인상은 그랬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 책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보다 훨씬 좋았다. 그 책도 좋았지만 이 책은 더 좋았다. 


뉴욕에 사는 소녀 앨마는 남편을 잃고 상심한 엄마 로사에게 하루빨리 남자친구가 생기기를 바란다. 그러던 어느 날 로사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온다. 제이컵 마커스란 남자가 <사랑의 역사>라는 소설을 영문으로 번역해달라고 의뢰한 것이다. <사랑의 역사>는 어떤 책인가. 앨마의 아빠 다비드는 젊은 시절 칠레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들른 책방에서 이 책을 구입해 (당시에는 여자친구였던) 로사에게 선물했다. 이후 결혼한 두 사람은 첫딸의 이름을 <사랑의 역사>의 여주인공 이름과 같은 앨마라고 지었다. 앨마는 <사랑의 역사>를 번역해달라고 의뢰할 정도의 남자라면 엄마와 잘 맞을 거라고 생각하고 깜찍한 일을 벌인다. 


이 소설에는 또 한 명의 '앨마'가 나온다.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열쇠공 레오의 첫사랑 앨마다. 레오는 10살 때 같은 마을에 살던 앨마라는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 둘은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지만, 마을이 나치에 점령되고 레오가 피난을 떠나면서 생이별을 했다. 종전 후 마을로 돌아온 레오는 앨마가 미국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앨마를 찾아 미국으로 간 레오는 앨마가 그 사이 부유한 남자와 결혼해 가정을 꾸린 사실을 알게 된다. 앨마의 장남이 자신의 아들인 걸 알고 기뻐한 것도 잠시. 레오는 앨마로부터 더 이상 나타나지 말아 달라는 말을 듣고 실의에 빠진다. 


같은 뉴욕 하늘 아래 살지만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던 (소녀) 앨마와 레오를 이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의 역사>라는 책이다(두 사람이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이 책의 핵심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랑으로 하여금 책을 쓰고, 그 책으로 하여금 또 다른 사랑이 생겨나는 기적. 그런 기적을 믿기 때문에, 작가들은 계속해서 책을 쓰고 독자들은 계속 책을 읽는 게 아닐까. 나는 오늘 또 어떤 책을 만나고 어떤 사랑을 경험할까. 책의 역사가 곧 사랑의 역사라는,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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