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한숨 - 내가 경험한 중국, 문학, 그리고 글쓰기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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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롄커는 현존하는 중국 작가 중에 전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지만, 중국 정부가 '자랑하는' 작가는 아니다. 그의 작품 중 다수가 중국 정부가 금기시하는 주제를 다뤘다는 이유로 검열 당하거나 금서로 지정되었고, 그 자신도 군대에서 쫓겨나거나 살던 집을 빼앗기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작가협회 소속 1급 작가로서 중국 정부에서 주는 월급을 받으며 글을 쓰고 있고, 그는 여전히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계속해서 발표하고 있다니.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침묵과 한숨>은 2014년 봄, 옌롄커가 미국 듀크대학과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등 일련의 대학에서 했던 강연과 기록의 녹취를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중국에서 태어나 살면서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해, 중국에서 작가로 살면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중국 출신 작가로 살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읽을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원래 체제에 저항하기보다 순응하는 편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1958년 중국 허난성의 작은 시골에서 태어난 저자는 오로지 배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군에 입대했다. 윗사람들에게 글쓰기 실력을 인정받아 빠르게 승진했고, 그 덕분에 가정 형편도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승진을 하고 서방에서 들어온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세상에는 - 국가를 찬양하고 상사에게 아부하는 글 외에 - 다양한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도 그렇게 진실되고 솔직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마침내 그렇게 진실되고 솔직한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그 글을 엮어서 책으로 출간했을 때, 사람들은 너무나 급진적이고 저항적이라며 손가락질했고 급기야 정부는 '금서'로 지정했다. 혹시라도 저자와 '엮여서' 고초를 치르게 될까 봐 군대 동료들은 눈인사조차 피했고 가족들은 울면서 전화했다. 저자 자신도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눈물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을 꺾지 않은 것은, 남은 길이 글뿐이었기 때문이다. 


모순적인 이야기인데, 중국 정부가 어떤 책을 '금서'로 정하면 국내에서는 판매가 금지되지만 외국에서는 판매가 더 잘 된다. 그뿐만 아니라 반정부 작가라는 칭호가 붙고, 권위 있는 문학상도 많이 받게 된다. 저자 역시 중국 정부로부터 '문제 작가' 딱지를 받고 나서 외국에서의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고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도 커졌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다며 혼란스러운 심정을 토로한다. '정부 검열'을 피하기 위해 수없이 '자기 검열'을 해야 하는 상황이 어떻게 인격을 파괴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검열 주체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의 저항은 과연 저항인가. 비판 대상이 묵과할 수 있는 수준의 비판은 과연 비판인가. 저항과 비판을 목표로 쓴 글이 매번 실패함에도 불구하고, 책이 잘 팔리고 명성이 더욱 높아지는 것은 차라리 조롱이나 기만이 아닐까. 중국에 비하면 훨씬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한국의 작가들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의식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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