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쓰고 엮음, 김원영, 남다은, 정희진, 최은영, 앨리슨 벡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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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소설가 최은영, 영화평론가 남다은, 변호사 김원영, 여성학자 정희진의 글, 김보라 감독과 미국의 작가 앨리슨 벡델의 대담 등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의 성공 이후 영화의 각본집을 출간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번졌는데, 다른 영화는 몰라도 이 영화는 반드시 이 책까지 챙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최종 편집본과 오리지널 시나리오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최종 편집본은 주인공 '은희'가 느끼는 외로움이나 불안감을 더욱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정을 바꾸거나 일부 장면을 삭제한 것 같다. 예를 들면 영화에서 은희는 가족 중 누구와도 친하지 않은데, 오리지널 시나리오에선 적어도 언니와는 함께 외출을 하거나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등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언니와 사이가 멀어지면서 은희가 느끼는 슬픔이 묘사되기도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애초부터 둘의 거리가 그렇게 가깝지 않았던 것으로 묘사되는 편이, 가정에서조차 고립되고 방치된 듯한 느낌을 받는 소녀의 아픔을 표현하기에는 더욱 적절한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오리지널 시나리오 상의 마지막 장면이 약간 다른데, 무엇이 왜 달라졌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다.


둘째는 국내외 유명 작가들이 영화 <벌새>를 어떻게 보고 느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설가 최은영의 글은 너무 좋아서 여러 번 다시 읽고 필사하기도 했다. 


어른들은 남자아이의 아주 적극적인 수준의 가학성도 용인하면서, 여자아이가 자기 의견을 정정당당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성격이 이상한 애'라고 규정짓곤 했다. 은희와 내가 요구받았던 착함은 '수동성'이었던 것 같다. 누가 널 때려도, 부당하게 대해도, 맞서지도 싸우지도 말고 그저 참고 삭이고 너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칠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착함'이라는 규율로 여자아이들에게 강요되었다. (최은영, 209쪽) 


한국 사회에는 상처를 미화하는 문화가 있다. 상처받은 사람이 상처를 '극복'하고 강해지는 서사를 환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상처는 언제나 사람에게 좋은가. 사람으로 살면서 받을 수밖에 없는 상처가 있겠지만, 받지 않아도 될 상처는 최대한 받지 않는 편이 더 좋지 않나. 상처를 미화하는 문화는 가해자에게 언제나 얼마간의 정당성을 주는 것 같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야. 정말 그런가. (최은영, 213쪽)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쓴 변호사 김원영의 글도 좋았다. 그에 따르면 이 영화에는 소리 내어 우는 사람이 두 명 나온다. 한 명은 은희의 아빠이고, 다른 한 명은 은희의 오빠다. 이들의 눈물은 가정 내 폭력과 억압의 '가해자'인 남성도 때로는 슬프고 죄책감도 느끼는 인간임을 보여주는 장치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울어야 할 사람들(은희의 엄마, 언니, 은희) 앞에서 남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울 수 있는 자유, 울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은희의 엄마도, 은희도 이렇게 울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울지 '못한다." 김원영, 233쪽) 여성학자 정희진은 중학생 은희보다도 중년인 엄마의 감정에 더 깊이 공감했다고 밝힌다. 장사하랴 살림하랴 아이들 키우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은희의 엄마는 오빠가 죽어도 슬퍼할 마음의 여유 따위 없다. 은희의 곁에 영지 선생님이 아닌 엄마가 남은 것이 은희에게 과연 좋은 결말일까. 많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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