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여자들 - 여성 간의 생활·섹슈얼리티·친밀성
권사랑.서한나.이민경 지음 / BOSHU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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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이나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피리 부는 여자들>에도 그런 여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은 대전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 문화기획자 그룹 BOSHU 팀의 권사랑, 서한나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등을 쓴 이민경이 공동 집필했다. 


권사랑은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나와 친구와 함께 투룸을 얻어 살게 된 과정을 소개한다. 머리가 크고부터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한 달에 100만 원을 벌까 말까 한 활동가이다 보니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은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자신처럼 비혼인 친구와 월세보다 저렴한 이자를 내면서 전세를 얻어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걱정과 달리 쉽게 부모님의 동의를 얻어 집을 나왔다.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가 40대 돈 많은 선배들이 살림을 합치는 이야기라면, 권사랑의 글은 20대 돈 없는 후배들이 처음 둘이서 살림을 이야기라서 비슷한 듯 새롭게 다가오는 지점이 많았다. 


"페미니스트 가운데 남자친구를 둔 여자들은 여자끼리 사는 그림을 보여줄 때 백발백중 솔깃해했다. (중략) 여러 질문에 답한 끝에 그들에게 거꾸로 여자들과 살기로 할 때 얻을 수 있는 분업, 돌봄, 지성, 친밀감, 재미 가운데 남자친구가 무엇을 주느냐 물으면 한 번도 제대로 답을 듣지 못했다. 답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화가 난 여자들은 남자친구와 싸우고 화해하거나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가 대체로 헤어졌다." (110-111쪽)


이민경은 여성들의 연대와 협력을 저지하는 '신화(myth)'에 관해 말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든가, '결혼 안 한다고 말하는 여자가 제일 먼저 결혼한다' 같은 말을 들어본 여성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이 말은 여성들로 하여금 서로를 연대와 협력이 불가능한 적으로 인식하게끔 함으로써 남성 중심 사회 체제를 공고히 하는 슬로건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민경은"내 삶에서 좋은 순간이란 여자들과 있을 때만 만들어졌"다며, 여자들이 흔히 남자와 함께 해야 한다고 여기는 일들을 여자들과, 여자들만이서 해볼 것을 권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이민경처럼 삶에서 좋았던 순간들은 대체로 여자들과 함께 있을 때 만들어졌던 것 같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도 괜찮다는 긍정도 여자들과 함께 있을 때 생겨났다. 일상에서 여성들과 어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더 많은 연대와 협력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저자들이 참 멋지다.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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