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계단에서 울지 - 평범한 어른이 오늘을 살아내는 방법
김나랑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패션 잡지 기자라고 하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치열하고 화려하게 살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패션 잡지 보그 에디터 김나랑의 에세이 <누구나 한 번쯤 계단에서 울지>에 따르면, 패션 잡지 기자가 치열하게 사는 건 맞지만 화려하게 사는 건 아니다. 패션 잡지 기자도 상사한테 까이거나 클라이언트한테 무시당하면 계단에서 울고, 쥐꼬리만한 월급 대신 소비로 내 가치를 증명하느라 카드값에 시달린다. 


삼십 대 초반 번아웃이 와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상사가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갑상선암이니?" 갑상선암을 감기처럼 가볍게 말하는 상사의 무심함이 서운했지만, 몇 년 후 정말로 건강검진에서 종양이 발견되었을 때는 섬뜩했다. 청춘을 다 바쳐 열심히 일했는데 남은 건 카드빚과 아픈 몸뿐이라는 생각에 서러웠다. 수술을 한 지금은 예전처럼 회사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일도 받은 만큼만 하고, 인간관계도 내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한다. "일 때문에 나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내 일을 사랑한다. 잡지가 좋고, 취재가 좋고, 글쓰기가 좋다. 이 일을 오래 잘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 건강을 지켜야 한다. 일단 내가 행복해야 일도 잘할 수 있다. 잡지 에디터뿐 아니라 거의 모든 직장인이 비슷할 거다. 우리는 우리를 지켜야 한다. 건강해야 한다. 열정을 회사에 이용당하지 말아야 하고, 부당한 일을 배당받았을 때 중압감에 시달려 해내지 못하면 능력 없다는 자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군가는 너무 안일하다고 하겠지만, 일 때문에 나를 잃고 싶지 않다. (pp.17-8)


어느덧 15년 차 직장인인 저자는 슬슬 두 번째 인생을 고민하는 중이다. 잡지 기자는 수명이 짧은 편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정년을 보장하고 있지만 그 정년을 다 채우고 나간 기자는 한 명도 없다. 빠르게 바뀌는 트렌드와 똘똘한 후배들을 보면, 나는 그저 회사에서 '라떼는 말이야~'라며 답답한 말이나 읊조리는 '꼰대'가 된 것 같다. 새벽 두 시에 카톡 메시지를 보내는 상사를 욕하면서, 정작 자신은 하루 종일 동료들에게 남의 뒷담화를 하면서 부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는 게 죄스럽다. 


이런 모습으로 계속 나이 먹기는 싫어서, 서른다섯에 처음으로 자전거 타기에 도전하고 구민체육센터에서 수영 강습을 받고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고 채식을 시작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노브라도 해보고,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기 위해 냉장고도 없애봤다. 아직은 직장을 그만둘 생각도 없고 다른 계획도 없지만, 이만하면 이미 괜찮은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한 게 아닐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