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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어웨이 ㅣ 앨리스 먼로 컬렉션
앨리스 먼로 지음, 황금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평점 :

요즘 나는 전체 4권인 장편 소설을 읽고 있는데 읽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작가가 먼저 웹상에 연재한 소설을 4권으로 갈무리한 것이라서 그런지 구성이 체계적이지 않고 내용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이런 경험을 몇 번인가 하면서 나는 장편 소설이라고 해서 단편 소설보다 더 나은 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아니, 어떤 단편 소설은 장편 소설보다 길이가 짧아도 훨씬 긴 여운과 감동을 남기기도 한다.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단편 소설의 대가로 손꼽히는 앨리스 먼로의 작품이 특히 그렇다.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 <런어웨이>는 과거 <떠남>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된 단편집을 새롭게 엮은 것이다. 기존 번역서에는 실리지 않은 <허물>, <반전>, <힘>이 실려 있어 반가움을 더한다. 이 단편집을 대표하는 작품인 <런어웨이>는 제목 그대로 남편과 단둘이 살면서 말 농장을 운영하는 칼라가 남편인 클라크에게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달아나려고(run away) 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 과정에서 이웃에 사는 실비아라는 여성이 칼라를 돕게 되는데, 실비아로서는 (그리고 나로서도)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일이 전개되어 곤욕을 치르게 된다. 결말을 계속 곱씹게 되는 작품이다.
<우연>, <머지않아>, <침묵>은 단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연결되어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줄리엣은 스물한 살에 이미 고전문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소지하고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인 재원이다. 그런 줄리엣이 아내가 있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어머니는 아프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이후 줄리엣의 삶은 임신과 출산, 육아로 크게 바뀐다. 줄리엣의 삶을 바꾼 딸 퍼넬러피는 줄리엣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삶을 산다. 이 사회가 기대하는 - 그리고 허락하는 - 여성의 삶은 뭘까.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