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2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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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으면서 이렇게 짜릿했던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살면서 정희진 작가님의 반의반, 아니 반의반의 반반반.... 만큼이라도 사유하고 글로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는 교양인에서 '정희진의 글쓰기'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두 번째 책이자, 저자가 읽은 64권의 책에 관한 글을 엮은 책이다. '나'와 '너', '여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사유를 깊게 하는 과정에 있어 길잡이가 될 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서문에서 저자는 '여성주의와 글쓰기 공부는 별개의 실천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언어를 통해 매개된다. 그런데 이 언어는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남성에 의해 만들어져 남성에 의해 계승되어 왔다. 여성주의는 남성의 언어를 자명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개입된 권력관계를 질문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알고 있는 지식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배치하는 것이다. 고로 여성주의와 글쓰기는 기존의 지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 편집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글쓰기에서 나를 설명하는 방식은 다섯 가지가 있다. 어떤 대상과의 동일시인 '정체성(identity)', 누구나 지니고 있지만 드러내지 않거나 부정되는 '당파성(partiality, 부분성)', 끝없이 변화하는 과정적 주체로서 '유목성' 사회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아는 '위치성(positioning)', 글과 글쓴이와 독자 사이의 사회정치적 맥락 상황, 흔히 성찰로 번역되는 '재귀성' 등이다. 흔히 글쓰기는 자기 내면을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외적인 상황과 조건을 파악하는 과정 또한 필요하다. 


사회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다 보면 자신의 계급과 인종, 국적 등을 인식하게 된다. 때로는 이러한 인식이 타인과의 연대 또는 협력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저자는 이러한 차이에 대한 인식과 이를 뛰어넘는 화합이야말로 글쓰기를 통해, 나아가 여성주의를 통해 이루어야 할 목표라고 설명한다. "페미니즘은 계급, 인종 등 여성들 사이의 다름을 인식하고 차이를 갈등이 아니라 자원으로 삼고자 하는 세계관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rooting), 동시에 이동하고 변화하면서(shifting) 성장하는 것입니다." (189-190쪽) 


사랑에 관한 문장도 적잖이 나온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의미다. 돈과 권력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다. 최고의 의미는 내가 타인의 앎의 노력 대상이 된다는 것(사랑받음), 그리고 상대를 알려는 노력이다(사랑).",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이를 사랑한다. 인생의 절정은 성별, 계급, 나이, 심지어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 상호 성장을 위해 자잘한 것(권력, 돈, 명예) 혹은 자기가 알던 유일한 세계를 포기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앎이 사랑이고, 사랑이 사람을 살게 한다는 저자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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