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박찬욱 감독이 추천했다고 해서 읽었는데, 책을 읽는 내내 무서워서 혼났다. 다 읽고 나서야 박찬욱 감독의 추천사를 읽었는데 이랬다. "당신이 타인의 고통에 예민하거나 지금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라면 <사브리나>를 읽지 마시라. 이 그래픽 노블은 사람을 천천히 미치게 만드는 전염병 또는 고주파가 포함된 백색소음, 독가스나 방사능 비슷한 것이다. (후략)" ... 이것은 정녕 '추천'사인가...
작품 자체는 차분하고 그림도 단정하다. 책을 펼치면 한 자매가 등장한다. 동생은 언니에게 내년 봄에 자전거를 타고 오대호를 도는 여행을 함께 하자고 제안한다. 위험하지 않겠느냐며 걱정하는 언니에게 동생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얼마 후 장면이 바뀐다. 캘빈이라는 사내가 공항 대기실에 무력하게 앉아 있는 남자를 데려간다. 캘빈과 남자의 대화를 통해 둘이 오랜 친구 사이이며, 남자가 실종된 '사브리나'라는 여자의 애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캘빈은 여자친구가 실종되어 패닉 상태에 빠진 친구를 정성껏 돌본다. 하지만 캘빈이 사브리나의 애인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캘빈의 얼굴과 집, 개인정보 등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급기야 '사브리나 사건'이 시민을 조종하려는 정부의 사기극이라는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로부터 협박 메일을 받는다. 사브리나의 동생 산드라 또한 피해자인 척 연기하지 말라는 비난을 받는다.
한국에도 이런 식으로 피해자 또는 피해자의 가족이나 지인이 가해자 또는 제3자들로부터 문제가 된 가해 행위와는 또 다른 가해를 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 공포스럽고 나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졌다. 누군가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하면 하루라도 빨리 가해자를 찾아내 처벌하기는커녕 피해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2차, 3차 가해를 하는 사람들의 심리, 대체 뭘까. 악마가 먼 곳에 있지 않음을 실감하는 요즘이기에, 이 책의 내용이 더욱 무겁게 또 무섭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