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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식당 (특별판) ㅣ 특별한 서재 특별판 시리즈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7월
평점 :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단 49일뿐이라면 무엇을 할까. 최현숙의 장편소설 <구미호 식당>은 사고로 죽었지만 저승 앞에서 불사의 생을 살고 싶은 여우 서호를 만나 따뜻한 인간의 피를 주는 대가로 49일을 더 살게 된 15세 소년 왕도영의 이야기를 그린다. 도영은 같은 마을에서 비슷한 시간에 죽은 민석과 함께 49일을 더 살게 되는데, 도영 자신은 이승에 대한 미련이 없지만 민석은 이승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 있어서 본의 아니게 두 사람은 아들과 아버지인 척하며 49일을 함께 지내게 된다.
처음에 나는 도영이라는 아이가 참 불쌍해 보였다. 한창나이인 15세에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으면 삶에 대한 미련이 많을 것 같은데, 내 생각과 달리 도영은 삶에 대한 미련은커녕 죽어서 잘 되었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찍이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아버지까지 여읜 도영은 할머니, 형과 함께 사는데, 할머니는 도영을 볼 때마다 "왜 태어나서 속을 썩이느냐"라는 말을 하며 구박하고, 도영보다 다섯 살이 많은 형은 걸핏하면 도영을 괴롭히고 폭력까지 휘두른다. 심지어 형이 할머니가 감춰 둔 돈을 훔치고는 도영에게 누명을 씌운 적도 있다.
그랬던 도영이 삶에 대한 미련이 아주 많아 보이는 민석과 함께 이승에서 49일을 더 살게 된다. 영혼은 그대로이지만 외모는 예전과 다르다. 도영과 민석은 아들과 아버지 사이로 위장하고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식당의 이름은 '구미호 식당'. 셰프 출신이라는 민석은 한 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다시 주문한다는 환상의 음식 '크림말랑'을 비롯해 참돔 탕수육, 고구마탕, 짤리오떼 같은 독특한 음식들을 차례로 만들어낸다. 민석이 장담한 대로 점점 입소문이 퍼지면서 식당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두 사람은 정신없이 바빠진다.
그렇게 매일 음식을 만들고 손님들에게 서빙하면서 바쁜 일상을 보내던 도영은, 문득 약속한 49일 중 20일이 흘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고로 죽었을 때에는 몰랐는데, 다시 한번 49일을 살 기회를 얻고 매일 충실한 나날을 보내보니 죽음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지 알 것 같다. 그런 도영 앞에 그토록 미워했던 형이 나타나고, 민석 또한 애타게 찾던 그 사람을 다시 만난다. 이승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도영과 민석은 과연 해묵은 감정을 해소하고 무사히 저승으로 갈 수 있을까. 해피엔딩인 듯 해피엔딩 같지 않은 결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성인과 청소년 모두에게 잔잔한 감동과 교훈을 줄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