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여자들 -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지음, 황가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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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데이터 공백은 침묵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공백은 결과를 초래하고 그 결과는 여자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친다. 그 영향은 상대적으로 사소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남성 표준 체온에 맞춘 사무실 온도 때문에 덜덜 떨기, 남성 표준 신장에 맞춘 맨 위 선반에 닿기 위해 까치발 하기처럼. 분명 짜증 나고 확실히 부당하다. (14-15쪽)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여성운동가인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의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을 읽음으로써 그동안 내가 무심하게 지나쳤거나 은연중에 느꼈지만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 불편함 또는 불쾌함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의 절반은 여성이지만 크게는 국가 정책부터 작게는 냉방 온도까지 일상생활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일들을 결정하는 주체는 대체로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무시되고 여성은 마치 남성의 신체와 그에 수반되는 삶의 경험이 당연하고 중립적인 것처럼 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도로다. 남자들은 맨몸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높은 반면 여자들은 장 본 것, 유모차, 자신이 돌보는 자녀 또는 노인과 관련된 짐을 들고 이동하는 경향이 높다. 하지만 도로에 관련된 인프라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주체는 대부분 남성이라서, 여성들은 도로를 이용할 때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반면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 버스나 지하철, 기차 같은 대중교통 시설도 마찬가지다. 이런 시설들은 남성에 비해 여성, 청소년, 장애인, 노인 등 소수자들이 더 많이 이용하지만, 관련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라서 이용자 대부분이 불편해한다.


문화계 또한 남성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등 그 어떤 문화 예술 장르를 보아도 여성이 주 소비층이라는 사실이 분명한데도 여전히 생산자들은 남성을 주 소비층으로 간주하고 타게팅 한다. 이는 여태까지 '사람'을 남성으로 인식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자들은 어느 정도까지 남자를 롤 모델로 인식하거나 남자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반면 남자들은 여자를 롤 모델로 인식하지도 않고 여자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할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언론인 세라 다이텀의 지적이 통렬하다.


"이봐, 당신들은 파란 고슴도치, 인공두뇌학적으로 강화된 우주 해병, 빌어먹을 용 조련사로 플레이하는 건 마다하지 않았잖아. (......) 그런데 내적 세계와 활달한 성격을 가진 주인공이 여자라는 건 상상을 초월하나 보지?" (38쪽)


젠더 데이터 공백은 남성들에게 자신들과 무관한 일로 받아들여지지만 여성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중요한 일이다. 데이터를 수집할 때 여성을 배제한 결과 여성들은 자기 몸에 맞지 않게 설계된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다치고, 효과 없는 약 때문에 병을 앓고, 제대로 된 수술을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다. 여성들이 이룬 성취나 업적이 수정되거나 삭제된 까닭에 남성들은 여성을 그저 성적인 대상 - '꾀어서 오늘 밤 집에 데려갈 수 있는 사람, 캣콜링 해도 되는 사람, 쫓아가도 되는 사람, 강간해도 되는 사람' -으로 간주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남성 데이터가 보편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여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위협, 혼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이에 대한 해결 방안까지 제시한다. 해결 방안이란 사회의 모든 분야에 여성의 진출을 적극적으로 장려 및 지원하고, 여성 스스로 여성의 성취를 기억하고 따르는 것이다.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주입하는 젠더관을 거부하고 여성 스스로 여성의 역사를 만들 때, 비로소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여자들의 역사가 제대로 쓰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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