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컬렉션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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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박완서가 있었다면 캐나다에는 앨리스 먼로가 있다. 어쩌면 이렇게 여성의 삶을 생생하고 치밀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그건 아마도 작가 자신이 경험한 인생과 이를 통해 얻은 안목으로 진지하고 냉철하게 타인의 삶을 관찰한 덕분일 것이다. 우리가 쉽게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어떤 감정들에 대해 어쩌면 이렇게도 탁월하게 묘사하는지. 읽는 내내 '역시 앨리스 먼로다!', '이래서 노벨 문학상을 받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앨리스 먼로의 다른 단편집들도 읽어봐야겠다. 


단편집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에는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부터 압권이다. 조해너는 매컬리 가에서 일하는 가정부다. 매컬리 씨의 외손녀인 새비서는 어느 날 단짝 친구인 이디스와 함께 편지 한 통을 보낸다. 조해너가 새비서의 아버지인 켄 부드로 씨에게 보내는 업무상 편지에, 장난으로 쓴 연애편지를 끼워 넣은 것이다. 편지를 받은 부드로 씨는 조해너(가 썼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딸 새비서)가 쓴 편지를 무시하지만, 새비서와 이디스는 계속해서 조해너와 부드로의 이름으로 연애편지를 써서 보낸다. 결국 이들의 '장난'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결말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나는 섬뜩했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마도 <곰이 산을 넘어오다>일 것이다. 그랜트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내 피오나를 요양소에 보낸다. 평생 그랜트만 사랑할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요양소에 간 피오나는 그곳에서 만난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남편을 본 체 만 체 한다. 섭섭한 마음도 잠시. 피오나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상태가 나빠져 집으로 돌아가면서 피오나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랜트는 피오나를 위해 남자의 아내를 찾아가 둘을 다시 만나게 해주자고 부탁한다. 그러자 남자의 아내는 그랜트의 부탁을 거절하면서도 은근한 추파를 보내는데... 과연 이 네 남녀 사이에 오고 가는 감정은 사랑일까 연민일까, 질투일까 증오일까. 결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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