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폴리스
마르얀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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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다들 비슷하게 사는 것 같지만 다르고, 다르게 사는 것 같지만 비슷하다. 마르잔 사트라피의 그래픽 노블 <페르세폴리스>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마르잔 사트라피는 1969년 이란의 라슈트에서 태어났다. 이란에서 태어난 사람, 그것도 여성이라고 하면 엄청난 억압과 차별을 받으며 살았을 것 같지만, 이 책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1980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저자는 히잡도 쓰지 않고 남자아이들과 같은 교실에서 공부했다. 이란 혁명이 일어나고 히잡 착용이 의무화되고 남녀 분리가 법제화되고 서구의 문물이나 문화를 접하는 것이 금지된 후에도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상을 지닌(게다가 부유한) 부모님 덕분에 비교적 자유롭고 편안하게 생활했다.

그랬던 저자가 자신이 이란인, 그것도 이란에서 온 '여자'라는 사실을 강렬하게 인식한 건, 하나뿐인 딸이 자유롭게 지내기를 원하는 부모님의 설득에 못 이겨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후의 일이다. 저자는 이란에서 나름 부유층의 자제로 편안하게 살았지만, 유럽인들의 눈에는 저자가 독재자가 통치하는 나라에서 온 가엾고 불쌍한 외국인일 뿐이었다. 이란에서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면 튀지 말라고 욕먹고, 유럽인들의 생활 방식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면 네 정체성을 부정하지 말라는 훈계를 듣기 일쑤였다. 이도 저도 아닌 존재로 부유하다 결국 저자는 이란으로 돌아간다. 낯선 자유보다 익숙한 억압이 낫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한 번 자유를 경험한 저자는 전보다 권위적이고 엄숙해진 이란의 사회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위험인물 취급을 당한 저자는 결국 다시 프랑스로 떠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최인훈의 <광장>이 떠오르는 구성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저자가 이란 출신 여성이라고 해서 나보다 훨씬 힘든 조건 하에 살았을 줄 알았다. 이란 여자들은 왠지 다들 가정에서 아버지나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할 것 같고,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했을 것 같았다. 이란 여자들은 아버지나 남편의 허락 없이 외출도 못하고, 남자들처럼 편하게 자전거를 타거나 자동차를 운전하지도 못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보니 저자는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고, 교육 지원도 아낌없이 받았으며, 여행도 많이 다니고 프랑스 유학도 다녀왔다. 이란 여자 모두가 저자와 같은 혜택을 누린 건 아니겠지만, 이란 여자 모두가 내 예상대로 불행하게만 산 것도 아닌 것이다. 

이란 출신이라고 해서 한국인인 내가 전혀 공감하지 못할 삶을 산 것도 아니다. 이란이나 한국이나 남성 중심 사회인 건 건 마찬가지이고, 어떤 나라에서나 여자로 산다는 건 그 나라의 '이등 국민'으로 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보통 가정에서도 '이등 자식' 취급 당하기 마련인데, 저자의 부모나 할머니는 한 번도 저자에게 '네가 아들이 아니라서 아쉽다'거나 '네가 아들 노릇 해야 한다'는 식의 말을 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에게 이런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가 있다면, 여자들의 삶은 훨씬 더 수월하고 편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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