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에 걸린 마음 - 우울증에 대한 참신하고 혁명적인 접근
에드워드 불모어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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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우울증이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도 있으니 몸과는 무관하다고 믿었다. 이 책을 쓴 영국의 정신과 의사 에드워드 불모어 역시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고수했다. 그랬던 그가 생각을 바꾼 건, 그의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다.


몇 년 전 그는 충전물로 때워놓았던 어금니 하나가 썩어서 충치 치료를 받았다. 충치 치료를 받은 후 그는 극도의 무기력과 스트레스를 경험했다. 치료를 마치자마자 극심한 우울감과 불안감이 밀려들었고,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는 것조차 싫어서 집에 틀어박혔다. 급기야는 죽음에 관한 생각들을 떠올리다 불안, 불면 등의 증세를 겪기까지 했다. 당시에는 이런 경험이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치과 치료 자체가 워낙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자연히 우울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때의 경험에 대해 다르게 생각한다. 치과의사가 어금니를 드릴로 파고 충치를 긁어내면 단기적으로 잇몸의 염증이 심해지고 치아에 있던 세균이 혈류 속으로 퍼져나간다. 그러면 신체의 면역계는 염증반응 수위를 높이고, 입속 면역세포는 사이토카인이라는 염증반응 호르몬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생겨난 사이토카인은 혈류를 타고 온몸을 돌면서 혈뇌장벽 너머로 염증반응 신호를 보내고, 이 신호들은 뇌의 뉴런에 도달해 우울증을 비롯한 마음의 염증을 야기한다. 이러한 몸과 뇌의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학문이 저자의 전공인 '신경 면역학' 또는 '면역 정신의학'이다.


우울증이 마음의 병이라는 믿음은 17세기 데카르트 이원론 철학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데카르트는 정신(영혼)과 육체가 별개라고 보았고, 이는 서구 의학을 포함한 근대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현대의 의학자, 의사들 대부분이 여전히 정신 질환과 육체 질환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이다. 육체의 염증이 정신의 염증을 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로 저자는 혈액 내 염증 단백질이 혈뇌장벽을 통과해 정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든다. 치과 치료뿐 아니라 백신 접종을 받은 사람들도 접종 이후 약간 우울한 상태가 되는데, 이 또한 백신 접종으로 인해 체내의 염증 반응 수치가 높아져서 우울 삽화를 유발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된 까닭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울증뿐 아니라 조현병, 자폐성 장애, 중독, 알츠하이머병 같은 정신질환 대부분이 체내의 염증 반응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아쉬운 점은 여전히 많은 의학자, 의사들이 정신 질환과 육체 질환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고, 육체 질환에 비해 정신 질환에 대한 연구나 조사, 보험 적용 등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 또한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마음의 병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는데, 이 책을 읽으니 우울증이 다름 아닌 신체의 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울증을 낫게 하려면 인스턴트 음식을 끊고 낮에 야외에서 운동을 하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17세기 데카르트 이원론 철학이 현대 의학의 기초를 제공했다는 설명도 흥미로웠다. 철학과 의학에 대한 관심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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