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 우리를 교묘하게 조종하는 경제학에 관한 진실
조너선 앨드리드 지음, 강주헌 옮김, 우석훈 해제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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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서 처음 무상급식을 시행하기 전에 벌어졌던 논란과 갈등을 기억한다. 당시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재벌 손주도 무상급식을 받느냐,"라며 무상급식의 형평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생계가 힘들어진 사람들에게 국가 또는 지방정부가 지급하는 지원금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지원금 지급은 포퓰리즘이라고, 자유시장 경제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자유시장 경제 질서의 선봉에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걸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영국의 경제학자 조너선 앨드리드의 책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는 경제학 교과서가 가르치는 개념들과 현대 사회가 어떤 식으로 상충되고 갈등을 빚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는 자유시장 경제 질서가 시장의 본질이며, 정부 개입은 이러한 경제 질서를 해치는 것으로 가르친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따르는 나라들은 시장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정부 개입만 하는 것으로 정책을 운영해 왔다. 하지만 지금, 점점 더 많은 나라의 국민들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신음하며 정부에 복지 정책을 요구하고 무료 급식소와 푸드 뱅크에 의존하고 있다. 대체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난 것일까.


저자는 1944년 <노예의 길>을 발표하며 경제학계의 스타로 급부상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소개한다. 하이에크는 자신의 책에서 정부의 힘이 시장의 힘보다 커지면 국가는 결국 나치 독일과 같은 전체주의로 전락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을 했다. 지금으로서는 극단적이고 파격적인 주장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랐던 당시에는 하이에크의 주장이 공산진영을 경계하는 자유진영의 경제 정책 기조로 삼기에 적절했다. 얼마 후 하이에크를 중심으로 한 몽펠르랭회가 결성되었고, 그들의 사상은 점점 더 확산되었다.


저자는 하이에크 외에도 자유시장 경제 질서가 현대 정부들의 기본적인 경제 정책 기조로 자리 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경제학자들을 호명한다. 그리고 이들의 주장이 어떻게 그토록 신속하고 확실하게 정책 입안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설명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주장은 어떻게 해야 '정책 입안자들'이 부자가 되는지를 간명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그들의 주장은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고, 그러한 욕망이 있는 자들이 대체로 국가의 상층부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책에는 한계가 분명한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보완하기 위한 대책도 나온다. 저자는 경제학자들이 상아탑을 벗어나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경제학이 결코 현실과 무관한 학문이 아님을 자각하고 좀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저자는 경제학자들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중립적인 위치에 있다고 주장하는 말을 믿지 말아야 한다고도 조언한다. 경제학은 정치학, 윤리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경제학은 미시적으로도 거시적으로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위험한' 학문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 밖에도 다양한 조언이 나온다. 경제학 전공자로서 새겨들을 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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