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기억 - 한국의 자본시장은 어떻게 반복되는가
이태호 지음 / 어바웃어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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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한국경제사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이름 그대로 한국의 경제 시스템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어떠한 성장과 부침을 겪었는지를 배우는 수업이었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이태호의 신간 <시장의 기억>은 한국경제사 수업의 최신판 같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의 자본시장이 어떤 식으로 발전하거나 후퇴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치밀하게 조사하고 자세하게 분석한 내용을 소개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의 자본시장에서 일어난 사건 중에 가장 충격적이고 여파가 컸던 사건은 무엇일까. 저자는 1958년 국채파동, 1962년 증권파동, 1972년 사채동결 조치, 1997년 외환위기 직전 대기업그룹 연쇄부도, 1999년 대우그룹 워크아웃, 2000년 닷컴버블 붕괴 등을 든다. 이 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사건은 1962년 증권파동이다.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했고 그중 하나로 자본시장 육성을 천명했다. 그 결과 대한증권거래소가 발행하는 대증주의 가격이 크게 뛰었고, 1962년 5월에는 지난 6년 동안 거래된 금액보다 많은 금액이 거래되었는데, 5월이 끝나기도 전에 그 돈의 98퍼센트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당시 정부는 거래소 지분의 상당 부분을 확보한 일흥증권의 윤응상 사장이 불법적인 방식으로 폭리를 취하려던 것을 잡아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1964년 야당은 윤응상이 중앙정보부로부터 9억 환을 받아 460억 환의 부당 이득을 챙겼고 이 중 67억 환이 다시 중앙정보부로 흘러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의 탄생 스토리도 흥미롭다. 당시 삼성은 1964년 '삼분(설탕, 밀가루, 시멘트) 폭리' 의혹 사건, 1966년 '한비(한국비료공업 사건' 등으로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상황이었다. 고심하던 당시 삼성그룹 회장 이병철은 한비 지분 51퍼센트를 국가에 바치고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삼성의 재건을 위해 사돈 지간인 락희(현 LG)가 하던 전자사업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당연히 락희는 탐탁지 않아 했고, 국민들도 삼성이 일본 기업 산요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는 것을 마뜩지 않게 여겼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비화다.


책에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의 역사도 잘 정리되어 있다. 한국의 아파트 시장은 산업화를 뒷받침하려는 정부의 인위적인 저금리 정책 아래 급성장했다. 외환위기, 닷컴버블 등을 겪으면서 위험성이 높은 주식 투자와 달리 부동산 투자는 '불패'한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퍼진 것도 부동산 인기의 한 요인이다. 저자의 설명대로 2009년 용산 참사를 통해 부동산 광풍의 민낯이 드러나는 듯했으나, 이번 총선 결과를 보면 아직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코로나 사태 진정, 세월호 참사 재조사 같은 대의보다는 집값은 높이고 세금은 덜 내고 싶은 사익을 우선시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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