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 서양철학사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니체와 러셀까지
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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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학문이든 시작은 철학이고 끝도 철학이다. 철학과 아주 멀어 보이는 과학 분야조차도 맨 처음에는 우주의 원리와 생명의 발단을 이해하고자 하는 철학자들의 머릿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틸리 서양철학사>이다. 이 책을 지은 프랭크 틸리(1865~1934)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철학 교수를 역임했다. 틸리의 대표작인 <서양철학사>는 1914년 초판이 발행된 이래 20세기 전반에 걸쳐 미국의 각 대학 철학과에서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과서'답게, 이 책은 서양철학사의 발전 과정과 대표적인 철학자들의 사상을 상세하게 서술한다. 서양철학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해, 소피스트의 시대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위대한 사상가들의 시대, 중세에 등장한 에피쿠로스 학파, 스토아주의, 스콜라주의 등을 심도 있게 다루고, 르네상스의 철학 경향과 근대 철학의 시작,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 독일의 합리론과 관념론, 헤겔 이후의 독일 철학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배울 것이 이토록 많은 시대에 굳이 어려운 서양의 철학을 배워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말한다. 총명한 사람은 결국 인간의 실존의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사람은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삶이 끝나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고 번민하게 된다. 이때 길잡이가 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내가 지금 하는 고민들 중에는 옛사람들이 먼저 한 고민들도 많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나보다 먼저 삶을 경험한 사람들이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고민한 끝에 얻은 답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철학자 또는 철학 사조에 동의하는지 생각해봤다. 처음 철학을 배운 고등학교 시절에는 내 성향이 에피쿠로스 학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쾌락이라는 자기 본능을 추구하는 존재다. 틈만 나면 놀고 싶고, 먹고 싶고, 자고 싶은 것은 인간다운 본능의 발현이다. 하지만 방종과 자기 탐닉만이 인간이 쾌락을 느낄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인간이 쾌락을 느끼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놀고 싶고, 먹고 싶고, 자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며 열심히 공부했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지금의 나는 실존주의에 관심이 있다. 실존주의하면 떠오르는 철학자는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이다. 사르트르는 실존보다 본질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유신론적 이론을 뒤집고, 본질보다 실존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무신론적 존재론을 주장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는 아무리 그래도 현대의 인간이 자기 자신의 안위보다 신을 중시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고, 종교를 지키기 위해 공동체의 안위는 물론 자신의 안위까지 져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새삼 사르트르가 얼마나 전위적인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정치학 전공자로서는 루소와 칸트 등을 다룬 부분이 흥미롭게 읽혔다. 정치학은 권력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인 동시에 권력에 대한 인간의 태도, 인간의 권력 추구 성향을 다루는 학문 분야이기도 하다. 루소는 인간이 본래 선하고 흠이 없다고 봤다. 인간은 원래 선하므로, 선한 인간이 직접 통치를 하면 자연히 좋은 사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칸트 역시 이상주의자였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논리에 기반해 판단한다고 봤다. 과연 그런가.


나는 인간이 권력을 추구하는 성향 역시 본능에 기반하며 결국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무엇을 쾌락으로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가 공감한 에피쿠로스 학파 역시 쾌락에는 질적 차이가 있고, 무엇을 쾌락으로 삼고 사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했다. 어떤 정치인은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쾌락으로 느낄 것이고, 어떤 정치인은 나만 잘 사는 사회를 쾌락으로 느낄 것이다. 그러한 차이가 왜,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지는 인간을 더욱 연구해야 할 것 같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몇 번은 더 반복해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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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취업 2020-06-24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은 그 쾌락이 아니잖아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키치 2020-06-24 19:5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청년취업 님!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에피쿠로스 학파가 쾌락이라는 개념을 인정하되 궁극적으로는 쾌락 중에서도 ‘아타락시아‘를 추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 글에서는 에피쿠로스 학파가 추구한 좁은 개념의 쾌락(=아타락시아)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넓은 개념의 쾌락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학창 시절의 저는 쾌락이란 마음 가는 대로 먹고 자고 노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면서 쾌락의 정의가 그것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에피쿠로스학파가 추구하는) 높은 차원의 쾌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위 글에서 그러한 깨달음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잘 전해지지 못한 것 같네요.

저의 공부가 짧고 제가 쓰는 글에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 정진하겠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