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김영민 논어 에세이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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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쓴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의 책이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재미있게 읽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입했는데, 읽으려고 보니 표지에 '(그냥) 에세이'가 아니라 '논어 에세이'라고 쓰여 있어서 잠시 낭패감을 느꼈다(21세기에 <논어>라니! 이걸 읽어 말아?). 1분 정도 고민하고 결국 읽기로 한 건, 저자에 대한 신뢰 때문인데(김영민 교수가 쓴 책이 웃기지 않을 리 없어!), 결론적으로 이는 매우 옳은 판단이었다. 책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다.


저자도 <논어> 읽기가 현대인들에게 무슨 의미인지, 어떤 효용을 지니는지 많이 고민한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자 또한 <논어>가 아무리 대단한 고전이라고 해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을 현대인들이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음을 인정한다. ("<논어>에 담긴 생각은 이미 죽었다." 11쪽) 다만 <논어>가 어떠한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했고, 어떤 계층 또는 사람들에 의해 필수 고전으로 인정받고 연구되어 왔으며, 그러한 목적 또는 의도는 무엇인지 등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알아볼 필요는 있다고 말한다. 즉, <논어> 읽기를 통해 텍스트를 이용해 콘텍스트를 읽는, 텍스트 정밀 독해 기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책에는 <논어>에 나오는 주요 문장들에 관한 해석을 비롯해 공자와 그의 제자들, 공자가 살았던 시대의 특징, 공자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시각 차이, 공자 이후 유학의 변화 등 <논어>와 공자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공자 하면 완전무결한 성인(聖人)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상 공자는 성인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출세와 권력에 대한 집착도 상당했고, 제자들에 대한 차별과 비난도 서슴지 않았으며, 남에게 당하면 참지 않고 똑같이 갚아줬다. 공자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누군가 공자에게 "덕으로써 원한을 갚으면 어떨까요?"라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되물었다. "그럼 덕은 무엇으로 갚으려고?" (93쪽)


흠결이 없지 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제자들이 공자를 따랐던 이유는 뭘까. 저자는 그러한 흠결이야말로 공자라는 인물의 매력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완전무결한 사람보다 약간의 흠결이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을 보면 열등감을 가지고, 일이 잘 안 풀리는 사람을 보면 측은지심을 가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의 젊은이들도 날고 기는 사람들보다는 나름 똑똑하고 성격도 괜찮은데 왠지 모르게 출세를 못하는 공자의 처지에 더 공감하고 열광했다. 조선 시대 때 중앙 권력에서 배제된 지방 사림들이 유학을 숭상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영민 교수가 쓴 책이 웃기지 않을 리 없'다는 예상대로 책 곳곳에 유머와 위트가 녹아 있어서 어렵다, 지겹다는 생각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정치학 전공자로서 학부 때 동양의 정치사상을 깊이 공부하지 않은 것이 늘 가슴 한편에 아쉬움과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감정이 다소 덜어졌다. 이 책을 시작으로 총 4부에 걸쳐 논어 프로젝트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나올 세 권의 책도 모두 구입해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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