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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평점 :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한 구절이 마음에 사무치는 요즘이다.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왔음을 사방에 핀 꽃들이 신나게 알리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꽃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못하고 창문 너머로만 감상해야 하는 현실이 기막히고 안타깝다. 이런 나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산책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 나왔다. 에마 미첼의 <야생의 위로>이다.
저자 에마 미첼은 무려 25년 동안 우울증을 앓았다. 사소한 일과도 버겁게 느껴지고 산다는 것이 축복이라기보다는 형벌처럼 여겨질 때마다 저자는 가까운 숲이나 들판으로 갔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또 걷다 보면 기적처럼 어둡고 우울했던 감정이 걷히고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기분이 나쁘지 않은 날에도 습관처럼 산책을 했다. 하다못해 작은 정원이라도 걷다 보면 우울증이 주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과학에서는 이를 '세로토닌 분비'라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일 년에 걸쳐 집 주변을 거닐며 관찰한 자연물에 관한 글과 그림, 사진을 담고 있다. 자연을 눈여겨본 적 없는 사람의 눈에 숲이나 들판은 그저 초록색의 이파리가 가득한 미지의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처럼 수십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자연을 관찰한 사람의 눈에는 수십, 수백, 수천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보물 창고나 다름없다. 키 작은 들꽃, 곰팡이 핀 낙엽, 그 위를 선회하는 잠자리와 새, 여우와 오소리의 발자국 등 온갖 자연의 신비가 눈앞에 있는데,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고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은 산책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다. 저자가 정성을 다해 가꾸는 정원에는 겨울 동안 보이지 않았던 새들이 찾아오고 꽃과 풀이 싹을 틔운다. 우울증은 보통 겨울에 심하고 봄이 되면 나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저자의 경우, 봄이 되어도 우울증은 여전하지만 봄이 진행되는 속도를 지켜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활력이 생기는 걸 느낄 수 있다. 저자가 놓아둔 먹이통에 정신없이 드나드는 새들을 보면 자기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두 딸과 함께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숲에 사는 식물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즐거워하는 딸들의 모습을 보면 저자의 기분도 나아진다.
실은 나도 기분이 가라앉을 때마다 친한 사람들과 가까운 산이나 숲을 거닐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취미가 있다. 바깥출입을 자제해야 하는 요즘은 못 한다. 그 대신 EBS 라디오 <임이랑의 식물수다>를 듣거나 이렇게 식물에 관한 에세이를 읽으며 마음을 달랜다. 산이나 숲 같은 거대한 자연을 체험할 수 없다면, 저자처럼 꽃 한 송이, 잎사귀 한 장을 놓고 지그시 찬찬히 관찰하고 감상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참에 집에 예쁜 화분을 들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