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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에게 홀려서 ㅣ 판판야 단편집
panpanya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20년 3월
평점 :

대체 불가능한 작품 세계를 가진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panpanya의 단편집 <게에게 홀려서>를 읽었다. 명성대로 'panpanya 월드'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는 책이다. 현실과 비현실이 오묘하게 섞여 있는 그림부터가 멜랑꼴리한 기분을 자아낸다.
표제작 <게에게 홀려서>는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유쾌한 작품이다. 평소처럼 통학로를 걸어가던 '나'는 골목 한구석에서 튼실한 대게 한 마리를 발견한다. '나'는 생물인 듯 활발하게 움직이는 대게를 보고 황급히 따라간다. 싱싱한 대게의 뒤를 쫓아 난생처음 보는 거리를 달린다. 매일 다니는 길인데도 왜 몰랐을까 생각하면서. 마지막에 '나'가 의외의 '득템'을 한 것은 그날 오후 내내 열심히 달린 대가라고 해야 할까. 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으면! ^^
<게에게 홀려서>처럼 유머러스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코코넛으로 전기를 생산한다고 알려진 공장의 비밀을 그린 <innovation>이나 전철을 타고 가다 우연히 내린 역에서 발견한 섬뜩한 풍경을 묘사한 <방황하는 바보> 같은 작품도 있다. 나도 한때 <방황하는 바보>의 '나'처럼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알지 못하는 동네에 내려서 길을 잃고 헤매는 꿈을 꾸곤 했다. 그런 꿈을 꾸고 나면 몸도 마음도 기진맥진해서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이 밖에도 다음 전개를 예측하기 힘든 기묘한 내용의 만화가 총 18편 실려 있다. 각 단편의 끝에는 작가 후기가 덧붙여져 있다. 현실과 비현실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이 책을 읽은 날 밤에는 평소와 다른 꿈을 꿀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