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 홈 : 가족 희비극 (페이퍼백) 움직씨 만화방 2
앨리슨 벡델 지음, 이현 옮김 / 움직씨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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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델 테스트'로 유명한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벡델의 개인사를 담은 그래픽 노블이다. 김하나 작가님이 추천하셔서 읽게 되었는데, 글과 그림은 물론 번역까지 훌륭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제목인 <펀 홈(fun home)>은 '장례식장(funeral home)'과 '재미있는 집(fun home)'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저자의 아버지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시골 마을에서 영문학 교사로 일하면서 남는 시간에 장의사로 일했다. 저자의 집이 장례식장이었기 때문에 저자와 남동생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하는 장례 일을 거들곤 했다. 아버지는 상당히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사람이었다. 저자가 '여자아이'처럼 굴지 않고 '남자아이'처럼 굴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고 때로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저자는 그런 아버지를 매우 싫어했다. 어서 빨리 자라서 아버지 곁을 떠나 자유롭게 살기를 간절히 바랐다.


마침내 뉴욕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해 부모 품을 벗어난 저자는 도서관에서 페미니즘과 레즈비어니즘 서적을 읽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얼마 후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런데 불과 몇 주 지나지 않아 저자의 아버지가 의문의 사고로 죽었다.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저자는 자기 때문에 아버지가 죽은 것 같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그동안 감쪽같이 숨겨온 '진실'을 알게 되고 아버지라는 인간을 다시 보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대목은 저자와 아버지가 함께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이다. 저자와 아버지는 같이 사는 동안 거의 내내 불화했지만, 책을 읽을 때만큼은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잘 통했다. 시골 학교의 영문학 교사였던 아버지에게 저자는 그 어떤 학생들보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 수제자였고, 하루빨리 시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던 저자에게 아버지는 새로운 세상을 안내해 주는 멘토이기도 했다. 마침내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 새로운 정체성을 얻은 저자의 삶과 그러지 못한 아버지의 죽음이 교차되는 장면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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