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환 시대의 한국 외교 - 포스트 팍스 아메리카나와 우리의 미래
이백순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대학 시절 국제정치학을 배울 때만 해도 미국 주도의 국제 정세가 한동안 지속될 거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당시에도 중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었지만, 중국이 아무리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하고 하드파워를 키워도 외교, 안보 상에서는 여전히 미국이 우위를 차지하며 문화, 예술 분야의 소프트파워를 이길 수 없다는 분석이 대다수였다. 이백순 대사의 책 <대변환 시대의 한국 외교>를 읽으니 그동안 국제 정치의 흐름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저자는 이 책에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퇴조가 두드러지며, 이로 인해 국제 역학 관계가 크게 바뀌었으니 한국의 외교, 안보 전략도 수정, 보완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한국은 미국, 중국과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큰 관련을 맺고 있는 나라이므로 그 어떤 문제보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책에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퇴조를 설명한다. 팍스 아메리카나란 과거 로마 제국이 전 세계를 호령하던 '팍스 로마나' 시대처럼, 현재 미국이 전 세계의 군사 안보 및 경제 질서까지 좌우하고 있음을 일컫는 국제정치 용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과 소련이 세계 패권을 양분했고, 소련 붕괴 이후에는 미국이 유일한 패권 국가로서 세계 질서를 주도해 왔다. 현재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약화로 인해 미국과 중국이 또다시 세계 질서를 양분하는 체제로 접어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국의 부상은 그렇다 쳐도, 미국의 상대적 약화는 어떻게 해서 일어난 현상일까. 국제정치학에서는 패권국이 패권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그동안 미국은 패권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우방국에 군대를 파견하고 재정 적자를 감수하는 등 적지 않은 비용을 치러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은 전 세계에 파견한 미군의 규모를 축소하고 무역 적자를 줄이는 등 패권국이라는 지위에 어울리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미국이 패권을 잃고 다른 국가가 패권을 차지할 것이 뻔한데, 현재로서는 유럽의 재부상을 기대하기 힘드니 중국이 가장 강력한 후임자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위기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원칙이란 기존의 동맹인 미국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전략적 판단과 우리 자체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일컫는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국가의 생존이라는 외교 및 군사의 일차 목표를 사수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국가의 군사 안보 능력을 키우고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또한 한국의 외교, 안보 역량의 대부분이 북한에서 오는 도전에 대응하는 데 소모되는 바람에 그 외의 분야에는 역량을 쏟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국제정치학 전공자로서 저자의 지적에 크게 공감한다. 한국에도 우수한 외교, 안보 인재가 많은데 대부분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 연구자로 육성되지 못하고 공직이나 언론 등의 분야로 유출된다. 이 밖에도 깊이 새겨들을 만한 현직 외교관의 귀한 조언이 많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