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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리커버 에디션)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평점 :

애정하는 작가 정여울의 책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의 리커버판이 출간되었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초판을 언제 읽었는지 확인해보니 2013년 5월이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덟. 서른 이후의 내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도 모른 채,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노력이 부족한 것 같아서 자책하고, 어렵게 고른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면 어쩌나 방황하던 시기다. 그때로부터 지금의 나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새 옷을 입고 다시 돌아온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읽으며 확인해 보았다.
이 책은 저자가 20대에게 보내는 헌사이자 연서 같은 책이다. 저자는 20대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화두나 문제들을 우정, 여행, 사랑, 재능, 멘토, 행복, 장소, 탐닉, 화폐, 직업 등 스무 가지 테마로 정리하고, 각각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통찰을 녹여서 설명한다.
지금은 유명한 작가이자 방송 진행자이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도 출강하는 저자이지만, 이런 저자도 20대에는 고민하고 방황하고 좌절한 적이 많았다. 부모님은 세 딸 중 장녀인 저자가 고시에 합격해 집안을 빛내줬으면 하는 기대를 내심 품고 계셨지만, 저자는 작가가 되어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고 싶은 꿈이 더 컸다. 그렇다고 작가의 길을 걷자니 생계가 불안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고, 지금은 글을 쓰고 싶은 열정이 이만큼 크지만 나중에는 이 열정이 식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있었다.
20대를 지나 30대를 건너서 40대가 된 지금은 그때의 자신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다. 20대가 괴롭고 힘든 건 당연하다. 뭔가를 이룬 적도 없고 손에 쥐고 있는 것도 없으니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 만하다. 그렇게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면서 계속 배우고 익히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20대라는 시기를 잘 보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내가 얼마나 아픈지'보다는 '내가 왜 아픈지'를 물었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이렇게 아픈 것이 가족으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서인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인지, 하고 싶은 일을 못 찾아서인지,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은 있는데 용기가 없어서 도전하지 못하고 있어서인지 등등 구체적인 이유를 찾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해결한다면, 20대를 잘 보내고 있는 것이고 20대 이후의 삶이 한결 더 가볍고 편안할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발견한 구절이나 화두가 아주 많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이것이다.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을 통해 드러날 때 우리는 심한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타인을 통해 나의 그림자를 보기 때문이다." (355쪽) 헤르만 헤세의 오랜 독자인 저자는 오랫동안 자신의 그림자를 끌어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해왔다. 나의 좋은 점, 잘난 점만 보지 말고, 나쁜 점,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현대 사회에 넘쳐나는 혐오의 감정들을 떠올렸다. 여성 혐오, 성소수자 혐오, 노인 혐오, 아동 혐오, 외국인 혐오, 난민 혐오 등등. 혐오는 오직 약자에 대해서만 발현된다. 권력자, 부자, 남성, 이성애자를 비난하는 감정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혐오로 성립할 수는 없는 이유다. 약자를 혐오한다는 것은 약자가 가진 속성, 즉 약함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약함을 혐오할까. 애초에 약함이란 무엇일까. 누가 여성성을, 동성애를, 늙음을, 어림을, 낯섬을 약함으로 규정해온 것일까. 혐오 문제가 공론화되기 전인 2013년에 이런 문제를 제기한 저자의 통찰이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