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마음동호회
윤이형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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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윤이형 작가의 소설에 대한 찬사를 수없이 들었지만, 정작 윤이형 작가의 소설을 읽은 건 그가 이상문학상의 불공정한 관행을 고발하며 절필 선언을 한 후의 일이다. 쓰는 사람이 쓰지 않겠다는 절명에 버금가는 결심을 하기까지 어떤 고통과 비장함이 있었을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짐작도 안 간다. 윤이형 작가 또한 2019년 8월 이 소설집을 세상에 선보일 때만 해도 이런 사태가 벌어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터. 이렇게 좋은 작가를 이제야 발견해 안타깝고, 지키지 못해 송구하다.


책에는 모두 열한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 <작은마음동호회>는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 벌어지는 논쟁 중 하나인 기혼/비혼 여성 간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기혼 여성 '경희'는 가사와 육아로 점철된 일상을 보내다가 대통령 탄핵 사태를 보고 뜻이 맞는 기혼 여성들과 함께 집회에 나가기로 한다. 이들은 '작은마음동호회'라는 모임을 결성해 자신들의 생각을 담은 글을 작은 책으로 엮기로 한다. 편집장을 맡은 경희는 오랜 친구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서빈'에게 일러스트를 의뢰한다. 비혼인 서빈은 적극적으로 경희를 돕지만 '남자 없이는 살지 못하는 친구' 경희를 전적으로 이해하는 건 아니다. 경희는 경희대로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 서빈이 원망스럽다.


<승혜와 미오>는 레즈비언 커플인 승혜와 미오 사이의 갈등을 그린다. 승혜와 미오는 오래 사귄 커플이지만, 최근 들어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이 눈에 띄고 그 때문에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일단 승혜는 가족에게조차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반면, 미오는 커밍아웃 후 가족과 절연한 상태다. 승혜는 베이비시터로 전직할 만큼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미오는 그렇게까지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승혜와 달리 미오는 비건이고, 승혜는 그런 미오 때문에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이 괴롭다. 사사건건 충돌하고 다투는 두 사람은 과연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을까.


이어지는 <마흔셋>은 비혼인 장녀와 트랜스젠더인 차녀, 병든 엄마 사이의 갈등을 그린다. <피클>은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지인일 때 겪을 수 있는 혼란을 그린다. 이 작품들은 모두 남성 중심 사회에서 똑같이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여성들이 무슨 이유로 연대하지 못하고 불화하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올해 1월에 출간된 윤이형 작가의 소설 <붕대 감기>와 문제의식이 비슷하고, 몇몇 인물들은 <붕대 감기>에 나오는 인물들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의심하는 용(하줄라프1)>, <용기사의 자격(하줄라프2)>, <님프들>,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 <수아>, <역사> 등은 이른바 '순수문학'으로 분류될 만한 작품이라기보다는 SF에 가까운 작품들이다. 현실의 경계를 초월한 이야기 속에서 현실을 빼닮은 부분을 발견하는 재미가 새로웠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의 주인공 '나'는 외계 존재들에게 납치된 남성이다. 외계 존재들은 '나'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하고 성적으로 착취하는데, 이에 대해 '나'가 항의하면 그들은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라고 주장하며 묵살한다. 어느 날 '나'는 외계 존재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 과거 자신이 전처를 '사랑'했던 방식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당시 전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여자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거야. 단지 하나의 물건으로, 대상으로 취급당하는 느낌을." (301쪽) 정복욕, 지배욕과 사랑은 얼마나 다르고 어떻게 다른가. 성별 불문하고 누구나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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