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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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지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어려지고 싶은 사람도 많을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여자라면, 어린 데다가 여성이라는 이중고를 짊어져야 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물론 예외도 있을 것이다).


벨기에의 작가 아들린 드외도네의 소설 <여름의 겨울>은 지극히 현실적인 한 여성의 성장담을 그린다. 주인공 '나'는 폭력적인 성향의 아버지와 순종적인 성향의 어머니 슬하에 태어났다. 하나뿐인 남동생 '질'을 끔찍이 아꼈고 질 또한 누나인 '나'의 말을 잘 들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질은 나를 피하고 아버지하고만 어울린다. 사냥을 즐기는 아버지가 질을 데리고 다니면서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하고 아무리 누나라도 여자한테는 잘해줄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생각을 주입한 까닭이다.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방관, 남동생의 무시 속에서 버티듯이 살아가던 '나'는 우연히 생각지도 못한 좋은 기회를 얻는다. 학교 선생님의 소개로 같은 마을에 사는 물리학 교수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특별 과외를 받게 된 것이다. 똑똑한 여자를 혐오하는 아버지가 알면 경을 칠 게 뻔하므로 '나'는 스스로 돈을 벌어서 과외비를 내기로 한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을 돌보는 베이비 시터 일을 시작하고, 일을 하면서 첫사랑을 만나고 아이에서 여자가 된다.


'나'의 아버지는, 얼마 전에 읽은 타라 웨스트오버의 자전적 에세이 <배움의 발견>에 나오는 아버지만큼이나 끔찍한 인물이다. 아내가 만든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식들 앞에서 아내를 구타하고, 심지어는 아내가 좋아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내가 기르던 동물을 총살한다. 같은 자식인데도 아들과 딸을 차별하고, 딸에게는 돈 한 푼 쓰는 것조차 아까워한다. 딸을 사냥터에 데려가서는 친구들과 그의 자식들 앞에 사냥감으로 내놓는다. 도망치다 넘어진 딸을 가여워하기는커녕 조롱하고 비웃는다.


'나'의 비극은 겉으로 보기에 불행한 조건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부모가 살아있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지 않으며, 학교 성적도 우수하고 인간관계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부모가 가정폭력과 방임을 일삼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 딸이라는 이유로 지원하지 않는데 겉보기에 멀쩡해서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다면 그 여자아이의 삶은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소설의 원제가 "진짜 삶(La vraie vie)"이고 그것을 부정하기 힘들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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