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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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한국문학 하면 무겁고 어둡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민족의 고통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민주화에 대한 염원을 노래하지 않으면 문학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문단 안팎에 존재했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문학의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비혼모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가 중심 화제로 떠오르고, 최은영, 김금희, 정세랑, 박상영 같은 젊은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종래의 한국문학보다 훨씬 가볍고 밝은 분위기의 작품들이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SF 문학의 인기가 상당하다. 그 중심에는 김초엽이라는 젊은 작가가 있다. 김초엽은 1993년생으로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김초엽의 첫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이 책에 대한 찬사를 많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이 책을 읽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쏟았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이 책을 2019년 올해의 책으로 꼽기도 했다. 읽어보니, 아쉽게도 나는 이 책으로부터 그만한 감동을 받지는 못했지만,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좋게 평가하는지는 알 것 같다. 나만 해도 이 책을 읽고 이제 더는 테드 창의 책을 읽으면서 '한국에는 왜 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가 없을까?'라고 한탄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책에는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감정의 물성>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트렌드가 끊임없이 등장해도 사람들의 기본적인 감정이나 상태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이에 착안한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화자는 그중에서도 유독 증오나 분노, 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아이템이 인기가 있는 이유를 궁금해한다. 실제로도 사람들은 기쁨, 즐거움, 편안함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얻기 위한 소비도 하지만, 슬픔, 분노, 공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얻기 위한 소비도 많이 한다(호러 영화라든가 놀이동산이라든가). 인간의 이러한 특성이 역사적, 사회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낳는지 궁금하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도 좋았다. 주인공 가윤은 터널을 통과해 우주의 저편으로 넘어간 최초의 우주 비행사가 될 뻔한 재경 이모를 동경해 자신도 우주 비행사가 된다. 마침내 치열한 경쟁을 거쳐 최종 후보로 선발된 가윤. 하지만 최종 테스트를 앞둔 상태에서 자신이 동경해온 재경 이모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터널을 통과한 최초의 우주 비행사가 되는 데 실패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SF라는 장르의 틀 안에서 현실에서 여성이 겪는 부당한 사회적 시선과 압박을 묘사하고, 나아가 과거의 여성과 현재의 여성이 연대해 업적을 계승하는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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