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국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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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 학자 서경식의 <나의 영국 인문 기행>은 2018년에 출간된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의 뒤를 이어 태어난 동생 같은 책이다. 형제자매가 닮은 것처럼 <나의 영국 인문 기행>과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도 닮은 점이 많다. 한 나라를 여행하며 그곳의 역사와 예술, 정치와 문화를 논하는 내용이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그렇다.


눈에 띄는 것은 <나의 영국 인문 기행>에서는 버지니아 울프를,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에서는 프리모 레비를 깊게 다룬다는 점이다. 버지니아 울프와 프리모 레비는 불세출의 천재였으나 각각 여성,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당하고 박해받다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차별과 인종차별, 파시즘의 위협에 시달리다 절망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거라고 본다. 이때의 극단적 선택은 진정한 의미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여전히 인종이나 민족, 국적, 성별, 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타자를 배제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지금이,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20세기 초반과 비교해 얼마나 다른지 반문한다.


저자의 여정은 케임브리지에서 시작해 올드버러를 거쳐 런던에 머물다 다시 케임브리지로 돌아와서 끝난다. 저자의 눈길은 루벤스, 프란스 할스, 벤자민 브리튼, 피터 피어스, 윌프레드 오언, 헨리 퍼셀, 잉카 쇼니바레, 잉그리드 폴라드, 터너, 존 컨스터블, 리처드 빌링엄, 레너드 울프 같은 이들에게 머문다. 대부분이 이민자, 외국인, 흑인, 유대인, 여성, 노동자 계층 등등이라는 이유로 배척 당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이는 아마도 저자 자신이 재일조선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소외되거나 배제 당하는 경험을 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서 영국을 좋아할 수도 없고 싫어할 수도 없는 복잡한 마음을 고백한다. 재일조선인인 저자는 제국주의, 식민지 같은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영국이란 나라를 마냥 좋아할 수 없다. 그러나 영국의 위대한 화가들과 음악가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을 감상할 때면 영국의 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비슷한 마음을,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가진다. 아마 일본에서 태어나 조선인으로 살아온 저자는 더욱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리라. 언젠가 저자의 일본 기행문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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