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중의 탄생 -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
군터 게바우어.스벤 뤼커 지음, 염정용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거에는 대중이라고 하면 정치인의 선동에 쉽게 휩쓸리는 무식하고 몰지각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독일의 철학자 군터 게바우어와 스벤 뤼커가 공저한 <새로운 대중의 탄생>에 따르면, 오늘날의 대중은 '파괴를 일삼는 대중'이나 '분노하는 폭도'가 아니라 '항의하고, 열광하고, 즐기는 대중'이다. 이들은 과거의 대중처럼 분명한 의식이나 생각 없이 행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파편화된 존재는 아니며 권력 앞에 순응적이지도 않다.


이 책은 대중 개념의 새로운 정의와 변화 양상을 학문의 관점에서 고찰한다. 대중은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있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대중은 개인들의 단순합 그 이상이다. 대중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실제의 사안에 관해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도, 정서, 평가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대중이 형성되는 방식은 유일하지 않다. 사안에 따라, 상황에 따라, 구성원들의 속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이 형성될 수 있다. 대중이 조직과 다른 점은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다. 대중은 다른 구성원의 의견이나 지시를 반드시 따라야 할 필요가 없다. 대중의 내부에는 권력의 차등이 없다. 오직 외부와의 구분과 이를 통한 차별 또는 배제만이 있을 뿐이다.


저자가 대중 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난민 문제가 부각되고 나서부터다. 난민 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독일의 정치인들은 '대중을 대표해' 난민을 반대하거나 또는 찬성한다고 발언한다. 이때 대중은 대체 누구인가. 대중은 구체적인 실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표상에 가깝다. 해당 정치인과 같은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들을 '대중'이라고 부르는 것은 확대 해석 혹은 지나친 일반화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정치인들이 자기한테 유리한 정치적 메시지를 내기 위해 대중을 들먹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을 대표한다, 대중을 위한다는 말 자체가 포퓰리즘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중보다 국민이라는 표현이 더 많이 쓰이지 않나 싶다. 국민을 대표해, 국민을 위해 이러저러한 정치를 하겠다는 정치인들. 그때마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이 대체 누구인지, 정확히 어떤 사람들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묻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포퓰리즘에 선동당할 수 있다. 저자는 인터넷과 SNS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대중 개념이 오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지금, 더욱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