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과 탄광
진 필립스 지음, 조혜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진 필립스의 <우물과 탄광>은 1930년대 미국이 배경인, 미스터리가 가미된 가족 소설이다. 한 여자가 어느 집의 뒷마당 우물에 아기를 버리고, 그 모습을 그 집의 둘째 딸 테스가 목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테스가 가족들에게 낯선 여자가 우물에 아기를 버렸다는 말을 전하자 가족들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튿날 우물에서 퉁퉁 불은 아기 시체가 발견되고, 테스는 밤마다 죽은 아기가 나오는 악몽에 시달린다. 보다 못한 테스의 언니 버지는 테스와 함께 우물에 아기를 버린 여자를 찾으러 나선다.


소설의 도입부만 보면 우물에 아기를 버린 여자가 누구인지 추리하고 탐문하는 과정을 담은 미스터리 소설일 것 같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1930년대 미국 탄광 마을의 생활상을 세세하게 반영한 가족 소설에 가깝다. 테스는 물론, 테스의 아버지 앨버트, 어머니 리타, 언니 버지, 남동생 잭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당시 미국 탄광 마을의 평범한 백인 가정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테스의 아버지 앨버트는 근면하고 성실한 가장이다. 어릴 때부터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 열심히 돈을 벌었고, 리타를 만나 결혼하여 자녀 셋을 두고 제법 괜찮은 가정을 이뤘다. 평일에는 광산에서 일하고 휴일에는 목화밭을 일구고 농사를 짓느라 몸이 남아나지 않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잠시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테스의 어머니 리타 역시 밤낮없이 요리와 빨래, 청소는 물론 농사일까지 하느라 정신이 없다. 큰딸 버지는 그런 부모님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 어린 테스와 잭은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게 더 좋다.


그림처럼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가치를 설파하는 소설인가 싶지만 당시로서는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졌을 법한 생각이나 장면들도 많이 나온다. 가령 테스의 아버지 앨버트는 탄광에서 함께 일하는 흑인 광부들을 차별하지 않고 친하게 지낸다. 지금으로선 당연한 일이지만 1960년대까지도 흑백 분리 정책이 시행되었음을 감안하면 앨버트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행동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앨버트인데도,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자기 안에 흑인을 차별하는 생각이 남아있었음을 깨닫고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테스의 언니 버지는 마을에서도 손꼽히는 미인이라서 데이트를 신청하는 남성들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버지는 연애나 결혼보다 취업과 독립에 더 관심이 많다. 이 또한 지금으로선 당연한 생각이지만 이 시절만 해도 여자는 '혼기'가 차면 적당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림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에 파격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 (당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었던) 교사가 될지 간호사가 될지 고민하는 버지에게, 메릴린 이모가 너는 국회의원도 될 수 있고 의사도 될 수 있다고 격려하는 장면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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