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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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동안 미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책이 마침내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책의 제목은 <배움의 발견>. 원제는 <Educated>이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올해의 책 1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등에 올랐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에 90주 동안 머무르며 최장기 베스트셀러 기록을 세웠다. 빌 게이츠와 버락 오바마가 올해의 책으로 이 책을 선정했고, 이 책을 쓴 타라 웨스트오버는 2019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들었다. 어떤 책이기에 미국이 이렇게 들썩일까 궁금했는데, 읽어보니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겠다. 


이 책을 쓴 타라 웨스트오버는 1986년 미국 아이다호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극단적인 모르몬교 신자인 부모는 성서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공교육을 불신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현대 의학을 불신해 아이들이 아프거나 다쳐도 병원에 보내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정부를 불신해 일곱 아이 중 네 명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저자는 아홉 살이 될 때까지 미국의 공공기관이나 학교, 병원 등 그 어디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사람으로 지내야 했다.


그런 저자의 삶이 극적으로 바뀐 건 열일곱 살 때의 일이다. 저자는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학교에 가본 적이 없었다. 저자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학교에 가면 부정한 사상을 주입받고 정부의 노예가 된다고 가르쳤다. 저자는 부모의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친척이나 이웃이 저자의 부모가 틀리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의 오빠 중 하나가 집을 떠나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에 진학했다. 그 오빠가 집으로 찾아와 저자에게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 가라고 했다. 저자가 대학에 가고 싶다고 하자 저자의 아버지는 "여자에겐 교육이 필요 없다"라며 반대했다. 저자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열심히 공부해서 검정고시를 보고 브리검영 대학에 진학했다.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저자는 부모가 옳고 세상이 틀리다고 생각했다. 저자의 아버지는 저자가 긴팔 옷의 소매를 걷거나 발목이 보이는 치마를 입어도 '창녀'라고 야단쳤다. 저자의 오빠는 저자가 립밤을 발랐다는 이유로 저자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대학에 가니 민소매 티셔츠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애들이 널려 있었다. 그때까지 아버지의 가르침을 의심하지 않았던 저자는 주변 여자애들이 전부 '창녀'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여자애들과 한 강의실에서 수업받고 같은 집에서 생활하는 자신이, 부모의 말대로 '미친년'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런 저자의 생각을 크게 바꾼 사건이 있었다. 서양 예술사 강의 시간에 교수님이 시켜서 교과서를 읽는데 모르는 단어가 있었다. 이 단어를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 강의실이 잠잠해지고 같이 수업을 듣던 아이가 저자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 단어는 '홀로코스트'였다. 저자는 그때까지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들어본 적이 있다 해도 그것이 얼마나 참혹한 일이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홀로코스트뿐만이 아니었다. 저자의 집에선 '깜둥이' 같은 욕이 일상적으로 쓰였다. 저자의 아버지는 노예제도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지 자식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다. 오히려 백인 노예주들이 흑인 노예들을 책임지느라 더 힘들게 살았다고 틀린 지식을 가르쳤다.


페미니즘의 정확한 뜻도 저자는 대학에서 처음 배웠다. 저자의 집에서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욕이었다. 그도 그럴 게 저자의 부모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며, 열등한 여성이 우월한 남성의 지배를 받는 건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 부모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오빠들이 여동생인 자신은 물론 여자친구와 아내에게도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자는 일부다처제를 용인하는 모르몬교의 방침에도 의문을 품고 있었다. 집을 뛰쳐 나와 대학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성서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이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자기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던 지난날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이후 저자는 브리검영 대학을 최우수 학부생상을 받으며 졸업했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하버드대학교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지냈다. 다시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돌아가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열일곱 살 때까지 학교 문턱도 넘어본 적 없는 사람이 10년 만에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식이 이만한 일을 해냈을 때 응당 칭찬하고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부모는 저자의 성취를 칭찬하거나 자랑스러워 하기는커녕 저자가 잘못된 사상에 물들어 거짓말로 자신들을 음해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학력을 얻었고 이 책으로 엄청난 부와 명예까지 얻었으나 정작 부모와의 관계는 더 악화되고 가족과도 멀어졌다. 저자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저자의 사례는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특이한 것은 아니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한국 여성들은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노동을 하다가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집안에서 정해주는 남자와 결혼해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만약 그들이 이 책의 저자처럼 기적적으로 교육의 수혜를 받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 기회를 얻었다면 이 책 같은 책이 수백, 수천 권은 쓰였으리라. 또한 저자의 부모는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나 복지 혜택을 '빨갱이'라며 비난했지만, 저자는 그 '빨갱이'들이 제공하는 학자금 융자와 장학금 덕분에 열악한 상황을 이겨내고 지금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여전히 더 많은 공공 서비스와 복지 혜택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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