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문의 비밀 2 백탑파 시리즈 2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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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각본 살인사건>은 의무감으로 읽었다면 <열녀문의 비밀>은 재밌어서 읽었다. 이야기는 '방각 살인' 사건 해결 이후 별일 없이 지내던 이명방이 경기도 적성에 현감으로 부임하게 된 이덕무를 도와 거짓 열녀를 색출하라는 어명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오랜만에 어명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게 된 이명방은 기필코 이번에는 김진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사건은 해결의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점점 더 꼬여간다.


사건은 이렇다. 적성 임 씨 가문의 장남이 병을 앓다 죽고 몇 년 후 그의 아내 김아영이 따라 죽었다. 임 씨 가문에선 남편을 따라 죽은 김아영을 열녀로 추대하며 마을에 열녀비를 세워달라고 한다. 예전 같으면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고 열녀비를 세웠겠지만 이 건은 수상한 점이 적지 않다. 김아영이 남편이 죽은 후 바로 죽은 것도 아니고, 삼년상을 다 치른 후 집안 살림을 챙기다 갑자기 자진한 까닭을 알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명방과 김진은 김아영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점점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진주의 가난한 집에서 자란 김아영이 웬만한 남자들보다도 학식이 깊고 글도 잘 썼으며, 심지어 북학파 학자들이 쓴 책을 읽고 거기에 쓰인 농사 기술이나 농기구 제작법을 실제로 시도해 본 것이다.


거짓 열녀 의혹을 받던 김아영의 또 다른 면모를 알게 된 이명방과 김진은 살해 위협을 받는 와중에도 철저히 수사에 임해 김아영의 누명을 벗긴다. 김아영은 실존 인물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뛰어나고 매력적인 인물이다. 옛사랑을 이유로 새로운 사랑을 거부하지 않는 유연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이며, 남자는 바깥에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안에서 살림을 해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남자 몫까지 경제 활동을 해낸 능력자다. 공맹 운운하는 보수적인 남성들과 달리 새롭고 참신한 학문이 있으면 거리낌 없이 배웠고, 생활에 도움이 되는 공부가 있으면 그 또한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사람 사귐에도 남녀 구분이 없고 반상의 차별이 없었다.


김아영의 위대한 행적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임씨 가문의 추악한 면도 함께 드러나는데, 그 실체는 조선 왕조가 발 딛고 서 있던 유교식 가부장제 질서의 모순과 다르지 않다. 사람을 동등하게 보지 않고 양반과 상민, 남성과 여성, 주인과 노예, 나이 든 사람과 어린 사람 등으로 구분하고 크게는 경제적 지위와 사회적 지위부터 작게는 복식과 생활 방식까지 차이를 두고 차별을 합리화했던 조선 왕조와 가부장제 질서, 그리고 임 씨 가문의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 집안의 이익을 해치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따르지 않으면 혈육이라도 버리는 매정한 모습에서 몇 년 후 일어날 문체반정의 그림자를 미리 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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