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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머리 앤 ㅣ 특서 청소년문학 10
고정욱 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월
평점 :

초등학교, 중학교 때를 돌아보면 학교 운동장에는 늘 남학생들이 있었다. 남학생들이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축구를 하거나 농구를 하면, 여학생들은 운동장 구석에서 수다를 떨거나 학교 안에만 머물렀다. 여고에 진학한 후에는 달랐다. 점심시간이 되면 전교의 여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나와서 놀거나 산책했다. 여대에서도 운동장에는 늘 운동을 하거나 동아리 활동을 하는 여학생들이 있었다. 적어도 나의 경험으로는 남자들은 바깥에서 움직이길 좋아하고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건 편견에 불과하다.
<빡빡머리 앤>은 교과서 수록 작가 6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각각의 소설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편견을 반영하고 있다. 고정욱의 소설 <빡빡머리 앤>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 중학생 조앤이 나온다. 어려서부터 축구 선수로 활동했던 조앤은 "여자애는 조신하게 요리나 미용 같은 걸 배우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축구를 그만두었다. 그러다 같은 반 남학생들이 자꾸만 축구 시합에서 지는 모습을 보니 자기가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같은 반 남학생들을 설득해 마침내 축구 시합에 선수로 나간다. "여자가 무슨 축구를 하느냐"는 남학생들의 말에 열받아 머리까지 빡빡 밀고 온 조앤은 어떻게 될까. 당당하고 호쾌한 조앤처럼 유쾌 상쾌 통쾌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니 끝까지 읽어보시길.
이어지는 <언니가 죽었다>는 죽은 언니가 어릴 때 성폭행을 당했던 기억 때문에 자신의 딸을 과잉보호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다. <파예할리>는 오빠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들어가라는 부모의 말을 거역하고 요리를 배우고 싶은 해미의 이야기를 그린다. <분장>은 상담을 받으러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에게 성희롱을 당한 여학생의 이야기를 그린다. <마카롱 굽는 시간>은 남아 선호 사상이 있는 집안에서 딸 둘을 낳았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엄마와, 그런 엄마 때문에 고통받는 딸의 이야기를 그린다. <넌 괜찮니?>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중에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은 <마카롱 굽는 시간>이다. 나 역시 남아 선호 사상이 지배적인 집안에서 딸로 태어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 한 번 받지 못했다. 엄마는 딸 둘만 낳고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씨받이'를 붙여주겠다는 모욕을 당했다. 나와 내 동생 이름이 남자 이름인 것도 겉으로는 집안의 돌림자를 따랐다고 하지만 내심 딸이 아니라 아들을 낳고 싶었던 부모의 소망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딸이 아들 노릇하길 바라는 마음은 과연 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일까. 삼십몇 년 동안 나를 괴롭혔던 문제를 이 소설에서 보고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