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글쓰기 - 혐오와 소외의 시대에 자신의 언어를 찾는 일에 관하여
이고은 지음 / 생각의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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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여성에게 최적화된 노동이다. 억압받는 여성의 삶 속에서 비교적 물리적으로 자유로이 행할 수 있는 노동인 까닭이다. 이는 여성의 한계 그리고 동시에 가능성에 대한 명제이기도 하다. 남성을 기본값으로 삼아 온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모든 여성은 언제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숙명에 놓인다." (이고은, <여성의 글쓰기>, 8-9쪽)


여성의 글쓰기와 남성의 글쓰기는 어떻게 다를까. 이고은의 책 <여성의 글쓰기>를 읽기 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이다. 저자 이고은은 경향신문 사회부와 정치부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임신과 출산,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후에도 꾸준히 글을 써왔고,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의 창립에 함께하기도 했다. 현재는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 뉴스톱에서 기사를 쓰고 있으며, 각종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책에는 저자가 경향신문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경력단절 시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 동안 꾸준히 글을 쓰고 고치고 발표하며 느끼고 생각한 것들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저자는 여성이지만, 오랫동안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대학에 진학하고 신문사에 입사해 남성 기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할 때에도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비슷한 학력, 비슷한 경력의 남성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고 비슷한 장래를 살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경험하면서 믿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똑같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남성 기자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반면 여성 기자는 일과 가정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결국 저자는 가정을 택했고, 힘들게 들어간 신문사에 '자발적으로' 사표를 냈다. 그제야 비로소 저자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인식했다. 그동안 자신이 받아온 교육은 '남성의 교육'이고, 자신이 해온 글쓰기는 '남성의 글쓰기'임을 자각했다. 여성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여성을 위해서는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음을 반성했다.


그때부터 저자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상황은 물론 열악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을 하다 보면 시간도 없고 체력도 딸렸다. 신문기자 시절처럼 글을 쓰는 대가로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글을 썼다. 아이들이 잠든 새벽녘에 혼자 일어나 글을 쓰기도 하고, 노트북 앞에 앉을 시간이 없으면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쓴 글들이 조금씩 세상에 퍼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제야 글다운 글, 나다운 글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글쓰기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필요하다. 사실 남성에게는 글쓰기가 필요 없다. 이미 세상이 남성 위주로 굴러가기 때문에 부러 사유하거나 힘들게 글까지 쓸 이유가 없다. 반면 여성에게는 글쓰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여성을 음해하고 왜곡하는 온갖 선동에 잠식되지 않으려면 여성 스스로 사유하는 힘을 길러야 하고 자신의 경험을 다른 여성들과 공유해야 한다. 저자 역시 글쓰기를 통해 자기만의 철학과 가치관을 깨달았고, 한국 사회에서 자신처럼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와 차별을 경험한 다른 여성들과 연대하는 경험을 했다. 저자는 더 많은 여성들이 글쓰기를 통해 이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특별한 '선물'이 있다. 각 장의 말미에 실린 글쓰기 팁이 그것이다. 저자는 글을 쓸 때 제목부터 정하는지 본문부터 쓰는지, 문장은 짧을수록 좋은지 길수록 좋은지, 퇴고할 때 유의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등 자세하고 구체적인 팁이 나와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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