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화가 완전판 1
무나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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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에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유명 화가 바르디의 저택에 레이먼드라는 청년이 찾아온다. 약속도 없이 찾아온 레이먼드는 응접실에서 기다리며 벽에 걸린 그림들을 둘러본다. 레이먼드는 그림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유독 한 점의 그림이 눈길을 잡아끈다. 그리고 커튼 뒤에 한 소년이 숨어 있는 걸 발견한다. 지저분한 얼굴과 허름한 옷차림으로 보아 이 저택의 시종인 것 같은 소년은 누구에게 들키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벌벌 떨며 두려워한다. 때마침 하인이 들어와 소년에게 욕을 하며 끌고 간다. 대체 그 소년은 누구이며 왜 거기에 있던 걸까.


무나무의 <대리화가>는 레이먼드와 이안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시작된다. 커튼 뒤에 숨어 있던 이안의 정체는 사실 이 저택의 시종이 아니라 '대리화가'이다. 이안은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지만 부모는 그의 재능을 알아볼 줄 몰랐고, 우연히 이안의 그림을 본 바르디가 이안의 아버지에게 얼마 안 되는 돈을 주고 이안을 샀다. 그날부로 바르디의 대리화가가 된 이안은 저택에 감금된 채 배불리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며 그림만 그리는 생활을 했다. 바르디는 이안의 그림으로 점점 더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었지만, 정작 바르디의 그림을 그린 이안은 노예만도 못한 생활을 하면서 죽기만을 바랐다.


그런 이안이 레이먼드를 만난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안은 응접실에서 레이먼드를 처음 봤을 때 자신의 그림을 그렇게 진지하게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내심 무척 기뻤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바르디 가 사람들과 달리 자신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 주고 친절한 말투로 말을 건네주는 것도 좋았다. 이대로 평생 바르디의 저택에 갇혀 그림만 그리다 죽을 줄 알았던 이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레이먼드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이안에게 천운과도 같은 기회가 찾아온다. 화염에 휩싸인 바르디 가의 저택에 갇힌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다름 아닌 레이먼드였던 것이다.


'클래식 BL의 모범'이라는 띠지 문구가 무색하지 않게 이야기 구성이 탄탄하고 전개가 매끄럽다. 단순히 이안과 레이먼드의 사랑만 그리는 게 아니라 레이먼드를 좋아하면서도 그 마음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이안과 이안을 이용해 로트실트 백작에 대한 복수를 완성하려는 레이먼드의 속내 등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점도 좋다. 저자의 다른 작품들이나 여타 BL 만화에 비해 정사 장면이 적어서 아쉽다는 의견도 있던데, 나는 딱히 정사 장면에 큰 흥미가 없어서 <대리화가> 정도가 딱 좋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 만화는 유명 화가의 대리화가로 살았던 이안의 복잡한 내면을 치밀하다 싶을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낸 점이 좋았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그림을 그렸을 뿐인데 그 그림이 나쁜 사람의 눈에 띄어 노예처럼 그림만 그리는 신세가 되고, 그렇게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잊어서 자신의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나타나도 믿지 못하게 되고, 마침내 그 사람을 믿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장벽이 나타나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이안의 상황이 너무나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다. 부디 이 두 사람에게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으면. 3권 나오자마자 바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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