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지혜의 시대
변영주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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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장이 하도 많아서 오랜만에 신나게 밑줄 그으며 읽은 책이다. 이 책은 영화감독 변영주가 2018년 초에 한 강연의 일부를 엮은 것이다. 저자는 이 강연에서 '영화로 더 나은 사회를 꿈꾸다'라는 주제로 영화에 대한 생각과 창작에 임하는 자세 등을 공유했다.


저자는 좋은 영화가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반대로 좋은 사회가 좋은 영화를 만든다는 말은 믿는다. 영화감독으로서도 좋은 영화보다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계에 남아 있는 불공정한 관행이나 불합리한 악습 등은 고치려고 노력한다. 저자는 영화뿐만 아니라 어떤 업계든 조직을 결성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일개' 무엇이라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든 자신과 공감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노조를 만들거나 단체로 행동하라고 조언한다. 잘못이 있다면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서 바로잡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악습이 계속 남고 폐단이 더욱 커진다. 그것을 나서서 바로잡는 것이 바람직한 공동체 구성원의 자세다.


저자는 영화감독이지만 영화만 보지는 않는다. 어부가 강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기다리듯, 손에 잡히는 소설, 만화, 드라마 등등을 닥치는 대로 읽고 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낯선 이야기를 듣는 기회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영감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리는 창작자는 게으른 것이다. 저자는 임권택 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그것을 깨달았다. 임권택 감독이 국악을 좋아하냐고 묻기에 안 좋아한다고 대답했더니 "변 감독 게으르네"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고 속이 상한 저자는 다음날부터 몇 달 동안 국악만 들었다. 그랬더니 자신이 국악을 왜 싫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이렇게 공포영화가 싫다면 한 3일 동안 공포영화만 보고, 헤비메탈이 싫다면 일주일 정도 헤비메탈만 들어보라고 충고한다. 그냥 싫은 건 취향이 아니다. 그중에 무엇은 싫고 무엇은 좋다고 말할 수 있어야 취향이다.


'영화계에서 여성이라 차별받는 부분'이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저자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저자는 "한국에서 전업주부로 사는 것만큼, 회사의 노동자로 사는 것만큼, 백수로 사는 것만큼, 학생으로 사는 것만큼 힘들다. 더 힘든 건 없어요. 똑같이 힘든 거지요."라고 답했다. 여기에 저자는 이런 조언을 덧붙인다. 힘들다면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힘든지 구분하라는 것이다. 내가 무능력해서 힘든지, 잘 몰라서 힘든지, 여성이라서 힘든지, 영화감독이 되려고 해서 힘든지, 이런 걸 구분할 수 있게 되면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이 보인다. 연대의 대상이 보인다. 이 밖에도 좋은 문장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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