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선물 - 수학을 하는 것과 인생을 사는 일의 공명에 관하여
모리타 마사오 지음, 박동섭 옮김 / 원더박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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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성격이 괴팍해 가정부를 자주 갈아치운다는 소문이 자자한 수학자의 집에 새로운 가정부가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였다. 괴팍하다고 소문이 난 박사는 알고 보니 사고 후유증으로 기억력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런 박사가 다른 건 다 잊어버려도 수학만큼은 똑똑하게 기억하는 모습을 보며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수학의 선물>을 쓴 모리타 마사오는 수학자다. 1985년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도쿄대학 과학부 수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는 일반인들에게 수학의 재미를 알리는 <수학 연주회>와 <수학 북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 중에 열아홉 편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수학이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그 이상이라고 말한다. 수학은 일종의 언어로서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 중 하나다. 수학은 숫자로 된 보편적인 언어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근대 유럽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저자는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수학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깨기 위해 대학이나 연구 기관에 적을 두지 않고 독립 연구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저자의 글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박사가 썼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간결하고 단정하다. 일본의 고승 구카이나 사와키 고도, 도겐 같은 선사부터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 칠레의 생물학자 프란시스코 바렐라, 헝가리의 수학 역사가 아르파드 사보 등 다양한 인물의 생애와 업적을 언급한 점도 눈에 띈다. 저자는 수학자라고 해서 수학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고 수학 외에 철학, 역사학, 과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논하며 수학과의 접점을 찾는다. 수학은 수험 공부를 위해 배우는 과목 중 하나가 아니라 우주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학문이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밝히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학문임이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저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누구일까. 저자는 일본의 수학자 오카 키요시를 여러 번 언급한다. 저자도 고등학생 때까지는 수학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모르고 그저 수험 공부의 일환으로 공부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서 오카 키요시의 책을 읽게 되었고, 진정한 수학 공부는 "해답을 덮고 문제와 마주"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해답 찾기에 치중한 수학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도 했다.


이 책은 수학 잘하는 법, 수학 성적 올리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수학의 의미, 수학 공부의 의미, 수학자로 살아가는 태도와 방법에 관한 책이다. 저자처럼 수학의 진정한 재미를 깨닫고 수학을 깊게 공부하는 경험은 해본 적 없지만, 수학처럼 당장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나름의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 가는 대목이 많았다. 저자의 문장이 유려해서 읽는 즐거움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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