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늑대의 다섯 번째 겨울
손승휘 지음, 이재현 그림 / 책이있는마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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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푸른 늑대 또한 눈을 뜬다. 그는 가장 느리게 달리는 붉은 노루보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굶어 죽으리라는 것을 안다." 인간이 동물의 감정을 읽는 일은 가능할까? 정확하게 읽을 수는 없어도 자세히 보다 보면 어떤 감정을 느낄지 짐작하는 일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손승휘의 소설 <푸른 늑대의 다섯 번째 겨울>은 동물을 사람보다 좋아하는 작가가 바이칼 호에 사는 늑대들에 관해 쓴 책이다. 때로는 인간보다 더 비정하고, 때로는 인간보다 더 사랑이 넘치는 늑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감동을 느낄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는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오기 시작한 바이칼 호의 풍경을 묘사하며 시작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하게 흩뿌렸던 눈송이가 날이 갈수록 점점 굵어지고 날씨도 점점 추워진다. 푸른 늑대는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무리를 이끌고 남쪽으로 가자고 금빛 늑대에게 제안한다. 하지만 금빛 늑대는 아직 그만큼 춥지 않다며 남쪽으로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푸른 늑대는 금빛 늑대 뒤에서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장난을 치는 어린 늑대들을 보며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늑대의 본성은 싸움꾼이다. 서로 물어뜯으며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 할 늑대들이 사이좋게 놀고만 있으면 다가오는 겨울을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날 밤 푸른 늑대는 무리의 늑대들을 불러 모은다. 이제 곧 호수 저편으로 떠날 채비를 해야 하니, 그전에 호수 주변에 있는 사슴들을 사냥해 실컷 먹고 배를 불려야 한다고 전한다. 얼마 후 늑대들은 사슴을 공격하러 떠난다. 그런데 이때, 늑대들의 눈에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늑대가 아무리 야생의 무법자라고 해도 총칼로 무장한 인간들을 상대하기는 힘들다. 푸른 늑대는 오래전 늙은 푸른 늑대로부터 '인간이 보이면 무조건 도망가라'는 가르침을 받았던 걸 떠올린다. 하지만 겨울은 코앞까지 다가왔고 먹잇감이 될 사슴들이 바로 눈앞에 있다. 여기서 인간들에게 잡혀 죽으나 사슴을 못 잡고 굶어 죽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일 터. 그렇다면 눈앞의 승부를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을까.


생존이라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늑대의 모습은 같은 문제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과 퍽 다르지 않다. 그래서일까. 실제로는 본 적도 없는 늑대들의 이야기인데도 왠지 모르게 감정 이입이 되고 늑대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늑대들에게 최대의 적은 인간인데도 말이다). 지금도 이 행성의 어딘가에는 다가오는 겨울을 걱정하며 이동을 준비하는 늑대들이 있을 터. 늑대의 털과 가죽을 탐내는 인간들의 총칼 앞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살아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왠지 모르게 경건해지고 겸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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