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의 길을 가다 - 전쟁이 아닌 협상으로 일군 아름다운 200년의 외교 이야기
서인범 지음 / 한길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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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막연히 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 여행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그런 내 눈에 이 책 <통신사의 길을 가다>가 들어왔다. 저자 서인범은 동국대학교 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호쿠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중국 명대이며 <명대의 운하길을 걷다>, <연행사의 길을 가다>, <자금성의 노을> 등 중국에 관한 책을 주로 썼다. 그런 저자가 조선과 일본을 오간 통신사에 관한 책을 쓴 건, 2013년 연행사의 길을 답사할 때 동료들 사이에서 '연행사의 길을 가봤으니 통신사의 길도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몇 년 후 여건이 갖춰져 통신사 답사가 성사되었다.


통신사가 처음 시행된 것은 조선 태종 때이다. 통신사 파견은 전적으로 일본의 요청으로 시작된 일이었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조선과 일본의 국교 관계가 단절되고 한동안 통신사가 양국 사이를 오가는 일은 없었다. 전국 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조선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며, 히데요시(정확히는 그 아들)를 이기고 자신이 막부를 세웠으니 조선과 예전처럼 화친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이러한 요청을 조선이 받아들였고, 이후 다시 통신사가 재개되어 1607년 첫 파견 이후 200년 동안 총 12번 조선과 일본을 오갔다.


통신사는 조선과 일본 양국에 어떤 의미였을까. 통신사 사절로 선발되어 일본에 가는 조선인들에게는 고생길이었다. 최소 반년, 길게는 1년에 걸쳐 조선에서 배 타고 바다를 건너 대마도를 거쳐 지금의 일본 규슈에서 출발해 막부가 있는 도쿄(과거엔 에도)까지 먼 길을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가족이 통신사 사절로 선발되면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슬퍼하는 사람도 많았고, 실제로 몇몇 사람들은 통신사로 떠났다가 불귀의 몸이 되기도 했다. 이 와중에도 통신사 사절에 끼어들어 조선에서 가져간 물건을 일본에서 팔고, 일본에서 가져온 물건을 조선에서 팔아 큰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이 매매한 물건 중에는 유성룡의 <징비록> 같은 귀한 문서도 있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은 통신사가 올 때마다 극진하게 대접했다. 일본인들은 살생을 금하는 불교 계율에 따라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육식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신사로 일본에 오는 조선인들을 먹이기 위해 힘들게 고기를 구하고 익숙지 않은 고기 요리를 만들었다. 조선인들이 좋아하는 귤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대접하고, 조선에는 없는 빵, 카스테라 등 서양식 과자를 대접했다. 통신사가 한 번 오갈 때마다 일본의 각 번에선 엄청난 출혈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신사는 조선보다 일본이 더 큰 이익을 가져가는 행사였다. 통신사를 통해 중국과 조선의 수준 높은 문화를 받아들이고, 통신사를 접대하는 과정에서 교통과 경제가 크게 발전했다.


이 책에는 저자가 동료들과 함께 통신사의 길을 따라간 여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대마도에 도착한 과정부터 다시 대마도에서 배를 타고 일본에 도착한 과정은 물론, 규슈에서 오사카, 나고야를 지나 시즈오카를 거쳐 도쿄에 이르고, 도쿄에서 다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위패가 있는 도쇼궁이 있는 닛코에 이르는 여정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답사를 하면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꼈는지는 물론, 타지에서 무엇을 먹고 어디에 묵었으며 어떤 사건과 사고가 있었는지도 낱낱이 적혀 있어 흥미롭고 유용했다. 언젠가 나도 저자처럼 통신사의 길을 따라가는 여행을 꼭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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