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송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윤해서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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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렇게 살아." 애길의 남편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주변 사람들이 애길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애길은 스무 살에 아이가 생겨서 결혼했다. 신랑은 '교회 오빠', 그것도 목사님 아들이었다. 당시 애길은 피아노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한 지 갓 1년이 된 상태였다. 친구들이 창창한 미래를 꿈꾸며 대학에서 공부하고 또래 남자아이들과 데이트할 때, 애길은 공부를 쉬고 출산 준비에 전념했다. 열 달 뒤 애길은 딸 쌍둥이를 낳았고, 남편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들이 모두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거짓말을 참을 수 없게 된 애길이 이혼을 선언하자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산다고, 별일 아닌데 애길이 유별나게 군다는 듯이 말했다. '신실한' 사람들은 '주님의 숨은 뜻'이라고도 했다. 남편이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렇게 억지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정녕 '주님의 숨은 뜻'일까. 일상에 작은 균열이라도 생기는 게 싫은 보수적인 어른들의 이기적인 사고방식이 아닐까. 그래서 애길은 독일로 떠났다. 지은 죄라고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거짓말을 할 만큼 사악한 남자를 택한 것뿐인 애길을 비웃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한국에는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윤해서의 소설 <암송>에는 재독 피아니스트 정애길을 비롯해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로 나온다. 애인을 만나러 홍콩에 갔다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혼수상태가 되는 '미소'와 서커스 예술가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만드는 일을 하는 '선주, 애길이 독일에서 낳은 아들 '모로'의 이야기 등이다. 모로는 어머니 애길을 이해하고 싶어서 한국에 오고, 애길이 한국에서 낳았던 두 딸의 행방을 알게 된다.


이들은 모두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에게 들리는 죽은 사람의 목소리는 아마도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람의 목소리인 듯 보인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죽음으로 한 걸음 다가갔던 이들은, 떠난 사람의 목소리와 말을 들으며 다시 삶을 향해 나아간다.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서로 그리워할 누군가를 만날 수 있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죽어서도 목소리만은 영원히 이승에 머무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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